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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Dec 04. 2019

구글을 창업하던 내 친구, 1초만에 10조원을 날렸다

사람 팔자는 참 알 수 없다

오늘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명의 구글 창업자들이 일선 경영직에서 사퇴했다. 성추행이니 독과 규제니 등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있었지만, 이들의 사퇴에 이런 문제들이 영향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이제 아빠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한다. 충분히 이해된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창업해서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그 고충이야 십분 이해된다. 게다가 독불장군도 아닌 양면성이 대립되는 두 사람이 공동 경영을 했으니, 피로감은 배로 누적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둘이 동시에 사퇴하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마운틴 뷰의 구글 캠퍼스에 갈 때면, 항상 넘쳐 나는 자전거와 셔틀이 아이디어와 노동을 강요하는 장치 같아 싫었다. 그리고 회의실과 복도마다 넘쳐나는 생수 가득한 냉장고도 너무 싫었다. 구글 캠퍼스에 들어가면 물, 자전거, 소파, 녹색 잔디가 지천에 깔렸다.


마치 클래식 연주곡을 틀어 놓으면 젖이 더 많이 나온다고 역설하는 목장 같다. 소가 공해에 지쳐 젖을 더 많이 내어 주고 마는거란 생각은 안 하는지, 모르겠다. 구글 캠퍼스가 자랑하는 생수, 자전거, 셔틀, 잔디가 클래식 연주곡이다. 쥐어짜 내기 위한 형틀이다.


내 친구는 구글의 창업자가 될 뻔했다. 사실 창업자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긴 진입로를 통과하면 벽돌 건물과 학교 설립자가 중남미에서 들여온 야자수들이 지천으로 익숙한 광경을 자아낸다. 그곳에서 교내 투어가 시작된다. <칼레의 시민> 조각상과 조그만 학내 예배당을 지나 블라 블라... 학과 건물의 자랑거리들을 몇번 돈다. 입학 전 교수와 논문 토론을 하러 들른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만남이 유명한 에피소드처럼 국내 창업컨설턴트들이 회자하지만, 아무 근거 없는 낭설이다.


단지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단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이들 모두 구글이나 웹 검색엔진이니 하는 것을 만들거나 이를 이용해 창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미국 명문대 출신들답게 MS와 HP에 입사할 생각이었다. 지금도 미국 대학생들이 마치 스타트업 창업에 진취적인 의식을 가진 것처럼 창업 부머들이 거짓말을 하는데, 전혀 현실과 거리가 먼 소설이다. 공부 잘하고 유명 대학을 나온 뛰어난 친구들은 고액 연봉을 는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게 일차적인 단기 희망이다. 창업은 무슨.


두 번째는, 이들은 둘이 아니라 넷이었다.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외 한국인 한 명과 재수 없다던 전형적인 WASP 한 명이 더 있었다. WASP는 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약자인데 네 가지 조건으로 선택받은 귀족층이다. 백인, 남자, 앵글로색슨계, 개신교 신자라는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WASP이 아닌 사람은 존 F. 케네디와 오바마, 단 둘이다. 케네디는 Protestant가 아니라 가톨릭 신자였고, 오마바는 다들 알다시피 앵글로색슨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1998년인 창업 이전에 네 사람의 티격태격 일화에서 두 사람이 떨어져 나가고 나머지 둘만 남아 구글을 이끌었다. 그럴싸한 구글의 창업 스토리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내 친구 A는 나와 대학 동기인데, 십여 년 전 우연히 정부 기관의 창업 심사단에 끼었다가 과거의 친분을 힘겹게 소환했다. 서로 살이 너무 쪄서 20대 초반에 기숙사를 날아다니던 얼굴을 아예 잊었다. 그리고 저녁 술자리에서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 다 함께 소규모 동문회 비슷한 번개를 만들었고, 참석한 A의 과학고등학교 동기가 술안주 거리를 뱉어냈다. A와 구글의 창업 이야기였다.


너무 착한 세르게이 브린과 약간은 너무 미국식인 레리 페이지, 그리고 천재라고 불리던 WASP, 그리고 전산 프로그래밍을 스탠퍼드에서 제일 빠르게 짠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A. 네 명이 대학원 시절,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해 각자의 교수들에게 제안하고 개별 학위논문과 별개로 'WWW의 수학적 네트워크 관계성 강화'라고 대충 이름 지을 만한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천재 WASP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검색엔진을 거의 사고 실험으로 완성시킬 수준이었고, 거기까지는 제발 나가지 말자고 나머지 세 명이 말리는 형국이었다.


A는 빨리 학위를 받아 한국에서 교수할 생각뿐이었고. 과학재단에서 지원받은 자금이 바닥나고 스탠퍼드의 학비 지원이 거의 끊긴 상태였다. 지금이 구글 창업자 두 명은 학위논문과 졸업이 우선이었다. 그 외에는 모두 가비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WASP의 기획과 A의 시물레이션으로 며칠 밤을 뚝딱 새워 돌려본 코드는 네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WASP이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불러 무언가의 합의를 도출했는지, 어느 날 실험실 한 편의 벤치에 셋이 앉아 A를 불렀다.


우리 창업할 건데, 너한테도 25% 지분을 줄게.
넷이서 각자 1/4씩 갖는 거지.



A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난 학위 받고 한국 가서 교수할 거야.
그리고 사업할 생각이 난 없어.
대신 네들 그냥 도와줄게.




1초 만에 10조가 날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거절이었다. 그래서 A는 그로부터 2년 후 박사 학위를 받았고 Post Doc. 를 반학기 지내는 동안 세 사람을 도와주었다. 자신이 1년 늦게 학위를 받는 불이익을 겪으면서 말이다. 물론 네 사람이 노는 게 재미있어서였다지만.


그런데 WASP의 천재성은 독단으로 이어졌고, 천재보다 낮은 등급의 수재 정도 되던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고집 세고 불같은 추진력의 WASP이 벌이는 일들에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한 편으로는 박사학위를 받겠다는 욕심을 놓지 않았는데, WASP이 하는 대로 둔다면 학위는커녕 학교에서도 쫓겨날 신세였다.


돈도 많았던 WASP이 이미 투자한 자금도 들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고, 이리저리 테스트하며 떠벌린 말들이 이들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젊은 치기에 이러지도 못하는데, 우수한 두뇌의 냉혹한 판단력은 치기 어린 감정과 다른 방향의 길을 가리켰다. 방황과 갈등이 헤어나지 못하는데, WASP의 천재성은 독단과 버무려져 검색엔진을 유사검색과 관계어 매칭이라는 비즈니스 모델까지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학위는 물 건너가는 건데.... 회사에서도 우리가 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이러다 우린 완전히 따까리 될 거야.




모처럼 두 사람의 뇌파가 공명을 울리더니 합치된 결론에 다다랐다. WASP에게 결별을 통보하고 WASP이 투입한 실험비, 공구비 등은 모두 두 사람이 2년 이내에 갚기로 했다. 그리고 각자의 길을 각자가 걷자고 합의했다. WASP은 혼자 해도 충분하다고 여긴 탓인지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두 사람과 헤어졌다. 그 순간에도 옆에서 A는 맥주를 마시며 이들 세 사람의 파국을 함께 했다.






술기운이 취해 오르자 A는 스스로를 탓했다. 교수하겠다고 한국으로 와서는 교수직은 때려치우고 투자 심사역을 하고 있었다. 참 인생 희한하게 돌아간다. 두 사람은 수십조의 재산으로 전 세계에 매일 명언을 던지고 화두를 불러 일으키는데, A는 술 먹고 신물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착한 학생, 모범생 콤플렉스가 수십조를 1초 만에 날렸다.


얼마 전 A는 서울 전셋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광명으로 이사 갔다. 큰 애가 이제 고등학생인데 대학 가기 전에 다시 서울에 진공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도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밤늦은 시각, 취기가 오르는데 갑자기 한 둘씩 일어난다.


야, 어디가?


응, 막차 끊겨. 그전에 일어나야지.




두 과학고 출신의 박사들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한마디가 불쑥 방정맞게 입 밖을 튀어나왔다.


그때 진작 막차 골라 타지 그랬어?



<친구 A가 어렵게 꺼낸 과거사를 기억과 잔상의 조합으로 엮어 써 보았습니다. 각자가 기억하고 믿고 있는 사실관계와 상이할 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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