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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Jan 05. 2020

여자 연예인의 스폰서가 되어 달라던 제안

세상 사람 생각은 판타지에 굶주렸다

우선 월 3백이라도 1년만 밀어주십시오.



몇 차례나 거절했지만,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먹잇감을 눈으로 포획한 독사처럼 순식간에 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달콤한 상상과 음흉한 일탈을 꿈꿀 수 있는 권력을 떠미는 파우스트의 사탄이다.



2억만 투자하신다 생각하시고 애들 용돈만 뵈실 때마다 주시면 됩니다.



4명의 여자 그룹 가수들의 기획사 대표가 지분 투자를 가장한 스폰을 요청했다. 언제든 원하는 아이를 행사에 쓸 수 있고, 그 행사는 이유와 형태를 불문한다는 조건이었다. 즉 내가 룸살롱에 불러 소위 도시락으로 쓰던, 혹은 그저 밤일 만을 위한 상대로 쓰던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는 유혹이었다.


이렇게 나는 평생 두 번 스폰서 유혹을 받았는데, 한 번마다 수차례에 걸친 진득함이 흘렀다. 그 사람들로서나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그녀들에게는 인생을 건 도박이었을 것이다. 눈물겹고 애틋했지만, 나는 두 번 모두 거절했다. 횟수로는 아마 거의 스무 번을 넘었을 것이다. 그 한 번마다 워낙 질척거려서였다.


모든 사기는 유혹에 앞서 '내가 할 만하네, 별건 아니구나'라고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다. 그 다음이 유혹이다. 가장 기본적인 고전의 사기 스킴이다. 그래서 스폰을 제안받는 사람들에게도 '몇 푼 안되는구나'라는 안도를 시작으로 유혹이 뻗친다.


월 수백, 몇 억의 투자, 라는 정도를 난감해할 사업가는 없다. 물론 그들이 마수를 뻗는 부류의 사업가들에게만 해당된다. 하지만 실제는 택도 없는 푼돈만 이렇게 쉬운 말로 뱉았을 뿐이다. 나머지가 몸통인데, 실로 도박판의 판돈처럼 이성을 마취시켜 그들의 아귀에 몸통을 고스란히 집어 삼킨다.


백화점에서 사 입어야 하는 옷값, 구두값, 오피스텔 월세, 여행비, 레스토랑 카드값, 그리고 그녀들이 연예인으로 크기 위한 활동비까지. 갖가지 목적으로 사용될 금액이 용돈, 생활비, 아니면 사랑해서라는 이유의 봉투로 뜯기고 만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도 모습도 무용담도 수없이 들었다.


난 탑 아니면 상대 안 합니다.


내가 거절하던 레퍼토리는 이랬다. 당대의 탑 수준으로 불리던 A양, B양, C양, 아니면 관심 없다, 라는 핀잔이었다. 당연히 그녀들이 스폰서가 필요하겠나,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듣겠지, 라는 안도의 확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다 팔리는 여자들이 남의 일같지 않게 안쓰러웠다. 아마 TV에서 몇 번 봤다는 이유로 친근함이 오래된 인연으로 착각되었나 보다.


하지만 이마저도 세 번째가 될 법한 제안에 무너졌다. 허구한 날 TV에서 노래를 부르고 히트곡이 거리의 공기를 채우는 여자 가수,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 내 귀를 공략했다.


더 이상 농담으로 화장짙은 거절을 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아예 더 이상 들어주질 말아야겠다고 결심했고, 단호히 내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종지부를 지었다. 다시는 내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만큼 욕설을 퍼부었다.


도대체 왜 저런 애들까지 스폰서가 필요할까?



중소 기획사 수준에서 어쩌다 대박 난 여자 연예인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기획사가 요상한 계약서로 삥 뜯어 착복하는 게 원인이었다. 십 년 넘은 중고 벤츠를 타며 거지처럼 살던 기획사 대표란 자가, 로또보다 더한 대박 연예인의 등에 긴 빨대를 꽂아 진액을 남김없이 빨았다.


그래서 겉만 화려했던 대박녀에겐 스폰서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먹고 입고 잠 자기 위해서. 물론 유명세에 어울리는 수준으로.


거의 반쯤 패 죽일 생각까지 들 정도로 욕설과 훈계로 내쳤지만, 정말 거지가 따로 없다, 라는 불쾌함이 술기운으론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치를 아는 모든 주변인들과 거리를 두었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상종하지 말라고 부풀려 충고했다.


마약이 육신에 기웃거리고, 알코올이 정신을 가출시키고, 자기 오판과 오만이 내 미래를 앗아가듯이, 스폰 제안은 일탈이라는 거부감보다 성공했다는 인증서 처럼 느끼도록 이성을 마비시킨다. 다행히 나는 그러기엔 너무 바빴고, 그러기엔 더 큰 성공에 대한 욕심이 컸고, 그러기엔 솔직히 제안도 성에 차지 않았다. 굳이 술집에서도 하지 않는 짓을 할 만큼 그 방면에 취미가 없었다.  심할 정도로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며칠 전 마지막 그 연예인이 매춘으로 사실상 연예계를 잠적한 지가 수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우연히 연초 케이블 TV에서 본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아주 짧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들은 제안으로부터 몇 년 후 벌어진 사건 같았다.


참 오랫동안 스폰을 찾아 헤매었구나, 라는 연민이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짠하게 과거의 실루엣이 흑백 영상으로 떠올랐다. 내 앞에서 사장의 호통을 한 귀로 흘려듣던 그녀들의 인사하는 웃음과 미소가 연사처럼 흘렀다. 지금은 한 두 명 빼고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20대의 어린 여자 아이들이 각자의 사정을 품에 안고, 나와 같은 사람 앞에 섰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자  아이돌이라는 상품 이름을 씌워 고객과 손님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고 허황된 자부심을 드러내고 싶은 얼빠진 남자들의 품에 숨은 발광을 끄집어낼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유혹에 취하고 욕망에 빠져 정신을 잃을 게다. 그리고 그녀들 또한 심신이 바짝 마른 채 남은 생의 기운이 흔적을 남김없이 소각되었을 것이다.


웃고 있는 유일한 승자는, 그들의 주위를 맴돌았던 브로커들과 기획자들 뿐이다. 내가 평생 바라 본 얼굴 가운데, 가장 더럽고 추잡한 놈들의 표정이 나를 노렸었다.

차라리 내가 그 기획사들을 인수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차가운 분노가 잠시 솟았다. 하지만 그것도 긴 시간 없이 사라졌다. 아예 그런 부류들을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지저분해 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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