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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Apr 07. 2020

내일은 사기꾼 집으로 강제 경매하러 가는 날

지명수배 중이던 사기꾼이 긴급체포되었다

지난달 오전 칼바람이 턱 밑을 스산하게 가로지르던 어느 오전이었다. 수억 원을 들여 수많은 사건사고를 여러 전문가에게 맡겨 봤지만, 이번 만은 내가 직접 가 봐야지, 라고 다짐했다.



중무장한 임모탈처럼 열쇠집 사장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먼 발치에서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섰다. 누가 봐도 내가 강제집행하러 온 채권자처럼 보이는지, 지금까지 한 번 본 적 없는 나를 용케도 찾아냈다. 그리고 서로가 몇 번이나 모의한 동지인양 눈인사 후 악수로 결의를 보였다.


사기꾼네 집으로 유체동산을 압류하러 가면, 으레 백의 백은 집안에 숨어 쥐 죽은 듯 물러나길 기다린다. 지명 수배자를 찾으러 온 경찰은 확실한 물증이 없는 한 사기꾼의 집 밖 현관문을 강제로 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쥐 죽은 듯 소리 내지 않고 대답하지 않으면, 경찰 할애비라도 그냥 물러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기껏 신고해 출동한 경찰이 썰물 빠지듯 물러나는 광경을 봤을 땐,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오기가 하늘 끝까올랐다.


그래서 강제로 현관문을 따고 들어갈 수 있는 유체동산 압류를 신청했다.



드드득, 드드득, 전자식 드릴이 도어록을 뚫은 뒤 문 아래 발시건  장치를 해체시키려 또 다른 구멍을 뚫을 때였다.


똑! 똑!  갑자기 종을 울리듯 경쾌한 돌림 장치 소리가 쇠소리를 울렸다. 집안에서 누군가 문을 연 것이다.


동그란 눈, 평균보다 작은 키, 역삼각형으로 모아 내려가는 턱선, 사기꾼 마누라의 얼굴을 닮은 딸아이가 문을 열었다. 아이는 아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어려 보이는 대학생 아들이 그놈의 눈빛과 똑같은 야비함으로 누나 뒤에 서서 염불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아버지,  올 때까지 나가 있어요. 들어오지 마!



사기꾼 부부를 판박이처럼 빼닮은 남매의 모습에, 이것들도 사람이라 애들도 이리 똑같이 낳았는가? 갑자기 비웃음이 실소로 크게 자지러졌다.


법원 집행관들이 간단한 강제집행 설명을 내던진 후 5차례의 경고 후 실내로 진입했다. 더 이상 공무집행을 방해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생각했는지, 남매는 뒷걸음질로 이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도 그들을 따라 사기꾼들의 거실 위에 두 발을 우뚝 디뎠다.


여기가 이것들이 살던 곳이구나.



부산하게 빨간딱지들이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들에 달라붙었다. 식탁, 텔레비전, 에어컨, 책장, 컴퓨터, 침대, 전자레인지, 온풍기., 제기랄. 돈 되어 보이는 건 눈 밖에 어딘가에 빼돌렸나, 궁색하고 볼품이 없다. 바라보는 내 기분이 착잡해졌다.


그런데 이 사기꾼들이 보이지 않는다.
젠장. 정말 어디 멀리라도 도망간 건가?


난 누구보다 극도로 예민한 촉을 자랑한다. 특히 시각, 청각에서는 초인적이다. 평소에는 평균보다 약간 좋은 시력과 평균보다 떨어지는 청력으로 일상생활을 보내지만, 집중하여 관찰할 때는 지진의 소리도 듣는 초능력이 솟아난다.


빨간딱지가 더는 들러붙을 곳을 찾지 못할 즈음. 화장실로 보이는 문 뒤로 조금만, 그리고 아주 짧은 물소리가 들렸다.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큰 소리가 나도록 문손잡이를 좌우로 돌렸다. 숨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놈이든 년이든 그것들이다.


나는 확신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1, 1, 2를 차례로 누르고 집주소를 말한 뒤, 지명수배자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남매의 두 눈에 절망이 하수처럼 넘쳐흘렀다. 이윽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하수에 목구멍이 잠긴 참사를 겪는 조난자처럼, 남매가 소리쳤다. 특히 큰 딸의 고성은 처절함이 무엇인지 알려주려는 듯. 등골을 서늘케 만들었다.


우리 엄마 없어! 없다고 몇 번 말해!
당신 절대 가만 안 둘 거야.


30여분 이상, 울음이 주안주가 된 처절의 반주가 나의 쓰린 속을 해장시켜주었다. 그렇게 나는 속을 달랠 수 있었다. 편안해졌다. 숙취가 풀릴 때 느껴지는 시원함이 이번에도 느껴진다. 시원하다. 시원하다. 그리고 정말 시원하다.


사이렌을 끈 경찰차 안으로 키가 160도 되지 않는 중년의 그것이 좌우 두 경찰관에게 잡힌 채 태워졌다. 나를 죽을 듯 쳐다보는 그것의 두 눈에게, 나는 승천한 광대 근육으로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마스크를 벗어 입모양을 그려 보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것이 알아채도록 나의 입가를 귓볼 아래까지 크게 끌어올렸다.


이제 시작이야.



한 달이 지났다. 내일은 그 날의 빨간딱지를 찾으러 간다. 강제경매로 유체동산을 매각하는 날이다. 다 팔아야 얼마 될지 몰라도 그것들과 그  자식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세상 잔인한 경험을 무한대로 반복시킬 것이다. 백번, 천 번, 그리고 만 번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계.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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