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수백 미터의 배아 벨트를 바라보는 견학단을 두고, <멋진 신세계> 속의 감독관이 뱉은 말이다. 곧 완성된 모습으로 성큼성큼 눈 앞에 다가올 것만 같았던 우리의 유토피아가 생물학적ㆍ화학적 과학기술의 배열체에 불과한 평균과 병렬화로 구성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전제로 작가의 데카탕스한 세계관을 그린 작품이다.
이것도 책이라고!
항상 원서 번역본, 특히나 20세기 명작을 읽을 때마다, 머저리 같은 번역 수준에 치를 떤다. 난독증을 일으키는 고얀 재주를 부렸다. 올더스 헉슬리가 한국어를 배워 자기가 직접 한글로 써더라도 이보단 나을 거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문구에 전자책을 읽을 때면 전례 같은 형광칠을 손가락으로 그어본다. 그리고 두 눈으로 찰칵 글귀를 망막에 픽쳐링한다.
참 오랫동안 음각으로 새겨진 그 문구가 더욱 낮은 곳으로 침식되어 글귀가 세월이 지나도록 굵어졌다.
겉모양의 행태와 새치 혀에 속지 말라는 말이지만, 세월에 침식된 글귀는 또 다른 금석본을 만들었다.
악마는 미카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고대 페르시아 종교의 토대에 영향받은 가자와 수메르 신앙은 절대신 아래에서도 절대신에 반역하는, 그런데도 절대신이 그 정도 깜냥도 어쩌지 못하는 모순된 유일신 사상을 만들었다. 시작이 어불성설인 모순 덩어리이다.
하나님만을 빼고 본다면, 사탄과 악마는 미카엘과 가브리엘의 가장 친한 친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둘은 수만 년을 싸워왔지만, 항상 승부의 끝은 보지 않는다.
일종의 동업자적 연대의식이랄까?
그래서 가장 악마 같은 사람은 가장 천사 같은 말과 행동으로 우리를 기만하고, 가장 천사 같은 사람은 가장 악마 같은 악의로 인간성을 잃게 만든다.
유일하게 헤잡은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선의를 보이는 자가 악의를 드러내기 전에 또 다른 악마로 갈아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