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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Dec 20. 2020

3. 사시미 칼  대신 장도리를 선택했습니다.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남자

어릴 적 역사 선생이 일러준 짧은 상식이다. 한 손으로 상하로 충격을 가할 수 있는 도구를 망치라고 부른단다. 해머처럼 어깨와 상체를 반동시켜야 하는 도구는 '마치'로 부르는 게 맞다고 했다.


줸장. 바보 같은 소리! 마치와 망치는 같은 놈이었다.


놈의 위치를 알았다. 늘 잠을 자지는 않지만 일주일 버티고 잠복하면 한 번을 드를 장소였다. 내게서 횡령한 돈으로 호의호식하던 놈의 친형이 사는 집이다. 힘겹게, 어렵게, 놈들의 주소를 찾았다.


출소 뒤 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사기 혐의로 놈을 고소했었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검찰에 넘기려는 경찰과 목청껏 싸워 대질신문을 벌였다. 그리고 놈의 주소를 듣고 보았다. 그리고 뒤를 쫓아 놈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사시미 칼, 바게트 자르는 독일 칼, 손잡이가 달린 가위의 자루, 얼음송곳에 환형 손가리개를 한 검을 테스트했다. 최소한 스무 번, 서른 번을 지르고 쑤시고 비틀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놈의 몸속에서 쉽게도 빼낼 수 있어야 한다.


피부와 근육을 자르고 가르기에는 넓은 날이 좋다. 찌르고 후비기에는 표면적이 작은 얼음송곳이 최고다. 넓은 날의 도검은 치명적이지만 내손에게도 치명적이다. 선수가 아니라면, 내손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송곳은 다루기는 쉽지만, 치명적이지 못하다. 아마도 좌상이 놈의 목숨을 연장시킬 수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무쇠 주물로 만든 장도리를 선택했다. 망치의 주물이 날아가지 않도록 철사줄을 나무 손잡이의 중앙으로 관통시켰다. 그것도 미덥지 못하여 관통한 철사줄을 가로로 묶어줄 타이 끈도 졸였다. 연습해볼까 생각하다가 부질없다 싶어 그만두었다.


놈을 죽이는데, 연습 따윈 필요 없다.



싱겁게 잠복이 끝났다. 불과 서너 시간이 되지 않아 놈의 집에 불이 켜졌다. 놈인지 놈의 친형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딱히 불러낼 방법도 없다. 택배를 가장하려고 우체국에서 박스 하나를 샀다. 그리고 조끼 하나를 상의로 걸치고 모자 하나를 깊이 눌러썼다.


누구시요?


익숙한 그놈 목소리. 늘어지고 갈라지는 경상도 사투리가 기저에 깔린 그놈 목소리. 이십 년 전 닭똥 같은 눈물로 취직시켜달라 애원했던 그놈 목소리. 십 년간 굽신거리며 도둑놈의 심성을 스크린 했던 악마의 목소리. 십 년 전 법정에서 내 이름을 하대하며 나를 무고했던 사악한 그놈 목소리.


그놈이다. 그놈 목소리다.


십 년 전부터 복싱을 배웠다. 술로 화를 다스리다 죽을 듯해서 복싱을 배웠다. 샌드백을 놈의 몸뚱이 삼아 복싱을 배웠다. 이날만을 위해 내 몸을 다스렸다. 단박에 숨통을 끊고자. 그리고 나를 저지하는 타인의 육신에 방해받지 않도록 복싱을 배웠다.


원 투. 라이트 훅, 레프트 바디.

열심히 연습해온 콤비네이션의 네 합에 놈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나는 등 뒤 허리띠에 끼웠던 장도리를 꺼내 들었다. 콤비네이션 후 왼손아귀에 큰 힘이 뻗쳤다. 아귀 안으로 장도리의 손잡이가 포옥 감겼다.


놈의 오른 어깨 위로 장도리를 내리쳤다.


한번, 두 번, 세 번째 장도리질에 놈이 왼팔을 가로 들어 장도리를 막고 섰다. 놈의 왼손 중지가 뒤로 꺾였다. 나는 놈의 왼팔꿈치를 겨냥해 모난 못을 두들겨 치듯 세차게 수없이 장도리를 내리쳤다. 이내 놈의 왼팔이 비너스의 팔처럼 절단 났다. 거죽이 없었다면 수류탄 맞은 파편처럼 주상복합 바닥에 뒹굴었을 텐데. 아쉽다.


흐늘거리는 왼팔이 쇼크 받은 듯 놈은 상체에 큰 경기를 일으켰다. 고통이 만든 것인지, 두려움이 만든 것인지, 혹은 더한 공격을 피하려는 본능의 방어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죽어! 죽어! 죽어!


그놈의 목 뒷덜미, 어깨뼈 모두. 등뼈 모두.  그리고 놈의 오른팔꿈치까지 어그러뜨렸다. 모든 마디와 연골마다, 그리고 굵은 뼈대의 중간마다. 크랙과 파괴의 고통을 주었다.


미꾸라지같이 법정을 빠져나갔던 그놈이 이제야 뼈 없는 연체동물의 민낯을 드러냈다. 내가 그리 만들었다. 그리고 독일 칼의 빛나는 서슬을 찾아 놈의 두개골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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