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창의력은 사라지고, ‘획일화된' 아이디어만 남는다.
한국의 창업지원 제도는 생각보다 촘촘하다.
대기업,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창업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한다.
학생들이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단계별로 다양하고, 예산과 공간, 멘토링, 네트워킹까지. 겉보기에는 하나의 생태계로서 기능하기에 손색이 없다. 대학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창업을 지원한다는 것이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니며, 오히려 ‘요즘 대학은 창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 구조 안에서 담당자로서 내가 가장 자주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창업’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에 선발 되도록, 투자를 쉽게 받도록 설계된 무언가다. 조금 더 명확히 말하자면, 정부사업이나 창업지원프로그램을 통과할 수 있는 ‘될 만한’ 아이템이나, 트렌디한 아이템을 주제로 하는 창업만이지원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어떤 팀은 자신들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조금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템을 소개하는 단어를 바꾸고 지표를 손질한다. 무엇이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지, 어떤 키워드가 심사위원에게 익숙한지, 어떤 구조가 창업 생태계의 문법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종종, 누구보다도 뛰어난 감각과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들이 ‘채택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자신을 설명하는 순간들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팀들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선택한 언어는, 역설적으로 처음 그들이 출발할 때 꺼냈던 말들과 닮지 않았다. 간극은 생각보다 빨리 벌어지고, 한번 배운 문법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구조가 정말로 ‘가능성’을 지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장려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성공사례를 토대로 가능성을 선별하고 규격화하는 방식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가능성은 자라고, 어떤 가능성은 조용히 밀려나는 그 풍경을 마주할 때면, 담당자로서 씁쓸한 감정을 피하기 어렵다.
얼마 전, 프로그램의 참가하고자 하는 지원자가 이런 메일을 보내왔다.
“딥테크 기반의 창업아이템이 아니면, 서류에서 합격할 가능성이 낮을까요?”
창업의 조건이 ‘정해져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체념처럼 들리기도 하고, 열정을 가지고 창업의 꿈을 키워나가야 할 예비창업가가 대한민국의 창업생태계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 같아 씁쓸하게 해당 메일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례적인 답을 했던 것 같다.
대학에서 창업지원 업무를 하다 보면, 이런 대화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지원금은 매년 늘고, 프로그램도 다양해지지만, 정작 창업가들이 느끼는 ‘가능성의 총량’은 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이건 단순히 자원의 문제가 아니다. 가능한 창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상상력이 지나치게 단일해졌다는 징후다.
기술은 너무 빨리 앞서갔고, 세계는 너무 많이 달라졌는데, 제도는 아직 2010년대 초반의 문법 안에 있다.
창업을 지원하면서도, 그 지원이 종종 누군가의 가능성을 밀어주는 게 아니라, 어떤 가능성은 조용히 걸러내는 체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는 지금, 가능성을 돕고 있는가. 아니면 ‘가장 안전한 방식의 창업’으로 팀들을 유도하고 있는가. 잘 되는 아이템의 패턴, 지원자들이 어렴풋이 느끼는 정답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지원할 만한 창업’만을 위한 획일화된 생태계를 설계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생태계 안에서, 창업팀은 자신의 문제의식보다, 시스템이 좋아하는 문법에 맞춰 자신의 아이디어를 번역하는 일에 더 익숙해진다.
문제는, 그 언어가 창업가의 언어인지, 아니면 심사자와 제도 설계자가 오래 전에 정해둔 성공의 기억에서 비롯된 언어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제 창업지원이라는 말은, 단순한 자금지원이나 경진대회가 아니라 ‘어떤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느냐’는 정치의 문제다.
그리고 그 구조를 다시 설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리 많은 지원을 하더라도 결국 너무 익숙한, ‘될 만한’ 창업만을 반복해서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혁신은 사회가 받아들일수 있을정도 만큼만 일어난다.
최근 발표된 GPT-4의 업데이트는 단 하루 만에 창작, 교육, 개발의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전 세계의 창업가들은 이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질문하고,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재구성하며, 기술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창업지원은 여전히 과거의 성공사례 구조를 본뜬 채, 그 틀 안에서 또 다른 성공을 예측하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창업지원 프로그램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그 속에서 ‘통과 가능한’ 창업의 형태는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 결국, 이런 판에 박은 듯한 아이템들은 서로 경쟁하게 되고 “이거, 이미 있는 거 아냐?”라는 냉소적이고 무성의한 평가를 받으며, 명확한 차별점 없이 애매하게 창업을 이어가게 된다.
(마치 한 블록 안에 탕후루 가게가 세 개쯤 생겼다가, 소비자들이 금세 질려버리고는 같이 망하는 구조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는 창업을 독려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너무 똑같은 것들이 동시에 몰려들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질리게 만들어 '뭘 말하려는지 뻔한' 획일화된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폐습을 바꾸려면 창업지원 방식부터 변경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