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AI칩 유니콘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by 글쓰는 유진

2024년, 생성형 AI 기술의 상용화가 본격화되면서 세계 반도체 산업의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기업은 단연 엔비디아(Nvidia)였다. GPU 시장의 오랜 강자로 군림하던 엔비디아는 AI 모델 훈련·추론 연산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서의 지위를 확보했고, 2023년부터는 기업가치가 단기간에 수 배로 증가하며 ‘1조 달러 클럽’에 진입했다.


많은 국가들이 고민하고, 꿈꾸고 있다.

“우리도 엔비디아 같은 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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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세계 최정상의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이지만, AI 시대의 주력 칩인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특히 AI 반도체 영역에서는 아직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한국에서도 ‘AI 칩 유니콘’이 등장할 수 있는지를, 정책·산업·창업 생태계의 관점에서 조망해보려 한다.


TSMC는 있고 우리는 없는 것

AI 칩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일 기업이 아닌 생태계 차원에서의 시야가 필요하다. 엔비디아의 성공 이면에는 TSMC라는 파운드리의 압도적 존재가 있었다. TSMC는 고성능 칩 생산이 가능한 3~5nm급 공정을 상용화하며, 엔비디아를 포함한 전 세계 팹리스 기업들의 핵심 제조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TSMC 역시 한때는 ‘없는 기업’이었다는 사실이다.


1987년, 대만 정부는 모리스 창을 미국에서 데려오며 TSMC 창립을 주도했다. 창업 자본의 약 절반은 정부가 직접 출자했고, 필립스에서 제조 기술을 이전받았다.


대만 정부는 연구기관 ITRI를 중심으로 인재를 양성했고, 신주(Hsinchu) 과학단지를 조성해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TSMC는 2024년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61.7%, 세계 최첨단 공정 점유율 90% 이상이라는 독보적인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에는 이런 ‘산업 조율자’가 있었는가?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사업 강화를 천명하며 파운드리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현재 수준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0% 내외에 그친다. 초기 수율 문제, 수주 불안정, 고객 기반 부족 등이 반복되면서 TSMC와의 격차는 줄지 않고 있다.


그 차이는 단지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다.


TSMC는 단일 기업이면서 동시에 ‘국가 전략의 집행자’였다. 대만은 TSMC를 키우기 위해 연구기관, 법 제도, 세제 혜택, 인재 양성까지 국가 인프라를 통합적으로 설계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 전반을 견인하는 구조가 고착되었고, 정부는 뒤따라가는 지원자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대만에는 반도체 산업 정책 전담 부서가 있으며, 국가 과학기술위원회와 산업부, 교육부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반면, 한국은 부처 간 칸막이와 정권 주기의 단기성과에 따라 산업 정책이 ‘프로젝트 단위’로 소비되는 경우가 잦다.


이런 차이는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대만은 팹리스-파운드리-후공정-장비까지 유기적인 수평적 분업 구조를 만들었다면, 한국은 여전히 대기업 중심의 수직 통합형 구조가 강하다. 이는 특정 기업의 경쟁력은 높일 수 있지만, 산업 전체의 역량은 확산되지 않는 구조이기도 하다.


즉, 한국에는 ‘TSMC 같은 기업’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을 탄생시키고 지지해줄 정치적 의지와 설계 능력을 가진 산업 조율자 자체가 부재했던 셈이라고 볼 수 있다.



'메모리 강국' 타이틀에 맞지 않는 애티튜드


한국은 DRAM과 NAND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오랜 기간 1~2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비메모리 분야, 특히 고성능 시스템 반도체와 AI 가속기 영역에서는 여전히 구조적으로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다.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첫째, 국가 산업 전략의 편향성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정부는 잘하고 있는 산업, 특히 수출 효자 산업에 자원을 집중해왔다. 메모리는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높았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강력한 플레이어가 존재했다. 이는 ‘선택과 집중’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결정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다변화와 혁신적 리스크 감수의 기회를 제약했다.


둘째, 시스템 반도체는 설계 중심 산업이며, 다수의 팹리스(fabless)와 툴 제공업체(EDA), IP 설계회사들이 협업하는 분산형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한국은 팹리스 기업 수 자체가 적고, EDA 및 설계 IP 분야는 거의 전적으로 해외 의존 상태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독자적인 고성능 칩을 설계하고 빠르게 시장 반응을 시험하는 데 한계가 따른다. 반면 미국은 ARM, Cadence, Synopsys 같은 EDA 기업들이 모두 자국 기반이며, 수백 개에 이르는 AI 반도체 스타트업이 설계-시제품 테스트-양산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셋째, 소프트웨어 역량의 부재 역시 치명적이다. AI 칩은 단순한 하드웨어가 아니라, 이를 구동하고 최적화하는 툴체인과 생태계 전반이 함께 작동할 때 진짜 경쟁력을 갖는다. 엔비디아가 전 세계를 장악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CUDA 기반의 개발 환경과 SDK, 라이브러리, 커뮤니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전히 ‘칩 설계’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고, 개발자와의 연결, 사용자 경험 설계, 오픈소스 문화 같은 소프트웨어적 사고가 부족한 편이다.


삼성전자 역시 이 영역에서 고전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의 대표 제품인 엑시노스는 성능과 발열, 전력 효율 등에서 퀄컴 대비 경쟁력이 낮다는 평가가 반복되었고, 최근 갤럭시 플래그십 라인업에서는 거의 배제되었다. 파운드리 사업 역시 주요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TSMC 대비 낮은 수율과 고객 맞춤형 기술 대응의 한계가 주요 약점으로 지적된다.


결국 한국은 핵심 기술은 있으나, 이를 산업으로 연결시키는 구조적 기반이 부족하다.


시장에서 성공하는 칩은 단순히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성능으로, 비용 효율적으로 양산하고 서포트할 수 있는 전체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지금의 한국은 ‘기술 중심 설계’는 있으나, ‘시장 중심 실행’은 부족하다. 이런 조건에서는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플랫폼형 기업이 탄생하기 어렵다.




엔비디아에 도전하는 한국의 반도체 스타트업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조짐은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AI 반도체 분야에 도전하는 스타트업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기술 실험 수준을 넘어, 실제 제품 출시와 대규모 투자 유치, 글로벌 진출 가능성까지 보여주는 기업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1. 퓨리오사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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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AI는 2018년 설립된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스타트업이다. 네이버의 전략적 투자를 기반으로, 1세대 칩 ‘워보이’를 상용화했고, 현재는 차세대 고성능 칩 ‘레니게이드(Renegade)’를 개발 중이다.


2024년, 메타(Meta)가 퓨리오사AI를 약 1.2조 원 규모로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회사 측은 독립 노선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력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빅테크의 제안조차 고사할 만큼, 국내 스타트업이 기술 주도권에 대한 자신감을 확보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 리벨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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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벨리온(Rebellions)은 2020년 설립된 후발주자지만, 불과 3년 만에 국내 주요 기업들(KT, 신한, 카카오)로부터 약 1,650억 원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삼성 파운드리와 협력해 고성능 AI 가속기 ‘아톰(Atom)’을 양산했고, 차세대 칩 ‘리벨(Rebel)’ 개발에도 착수했다.


국내 민간 자본이 AI 반도체에 전략적으로 베팅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3. 딥엑스(Dee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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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엑스(DeepX)는 초저전력 엣지 AI 칩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엣지 디바이스, 스마트 가전, 로봇 등 범용 AI 하드웨어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 2024년 기준 시리즈C 투자 후 기업가치는 약 7,200억 원에 달하며, 자체 개발한 칩 4종을 통해 글로벌 고객사와 양산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는 엔터프라이즈용 칩에 치중된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시장 세그먼트에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국산 AI 칩’이 가능하다는 가설에 대해 실질적인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 팀들이다. 단순히 기술을 보유했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나올 수 있는 형태로 제품을 구현하고, 글로벌 고객과 대화 가능한 지점까지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퓨리오사AI의 독립 노선은 하나의 전환점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좋은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은 결국 대기업에 흡수된다’는 한국 특유의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자생력을 갖춘 기술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여전히 많다.


글로벌 수요처 확보, 소프트웨어 최적화 툴체인 구축, 안정적인 양산 수율 확보는 AI 반도체 산업에서 핵심 경쟁력이자 진입 장벽이다. 특히 퓨리오사나 리벨리온 같은 엔터프라이즈 칩 설계사는 고객 맞춤형 커스터마이징, 지속적인 펌웨어 업데이트, 서비스형 반도체 모델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시장 구조 안에 놓여 있다.


한국 스타트업이 이를 단독으로 해결하긴 어렵다


즉, 이들은 ‘성장 가능성’ 그 자체보다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의 이행 필요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여기서 정부와 대기업, 투자자들이 어떻게 호흡을 맞추느냐에 따라, 이 가능성은 유니콘이 될 수도 있고, 또 하나의 사라진 시도가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나오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경쟁력을 넘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다음 다섯 가지는 핵심 전제이다.


1. 팹리스 생태계 구축: 칩 설계 기업을 중심으로 민간·공공의 투자와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

2. 파운드리 인프라 개선: 스타트업이 적정 비용과 일정으로 양산할 수 있는 조건 확보.

3.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보: CUDA와 유사한 툴체인, 오픈소스 활성화가 필요하다.

4. 글로벌 네트워크 연결: 시장 개척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과 투자자 접근성 개선.

5.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정권 교체나 관료 리스크에 흔들리지 않는 장기 비전 수립.


단기적 수익성과 무관하게, 국가 차원의 전략적 육성과 민간의 도전정신이 만날 때 비로소 ‘한국형 AI 반도체 유니콘’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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