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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Jul 06. 2023

뜨개덕후

실천1 -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새벽까지 팔꿈치 통증을 참아가며 가방을 뜨던 어느 날, 선물용도 판매용도 아닌 가방을 미친 듯이 뜨는 이유를 더듬어보다가 '덕질'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행위'라는 사전적 의미를 적용한다면, 나는 뜨개질 덕후이다. 리빙박스 가득 쌓인 털실, 특별히 따로 자리를 부여받은 책장의 뜨개도서들, 다양한 뜨개가방과 코바늘인형이 줄을 서있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아도 그렇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뻑뻑한 눈과 어깨 통증을 참아가며 몇 시간씩 뜨개질을 하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을 보아도 그렇다.

조용하고 말썽 없이 무난한 매일을 반복하던 학생시절, 운동도 음악도 잘하지 못해서 매년 기초조사서 '취미'란에는 주로 독서를 적었다. 책을 정말 좋아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나중에는 음악감상으로 적기도 했다. 중학교 동아리 시간에 가정선생님이 운영하는 코바늘 수업을 들은 이후로 드디어 색다른 나만의 취미를 적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가 이 덕질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방석을 만들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투리 실로 눈사람 같은 작은 인형을 만들었다. 한여름에도 작은 손가방에 실을 넣어 다니며 버스 정류장에서 뜨개질을 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한두 걸음 물러났던 기억은 사실일까 훼손된 추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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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조금씩 좋아지고, 유튜브 무료 강의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선물용 목도리나 인형을 많이 만들었다. 때로는 시간과 정성만 들어간 무용한 어떤 것을 떠넘기는 과정이 되기도 했지만, 남을 위한 무언가를 빚어내는 시간이 따뜻한 마음을 남겨서 계속할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인형, 양말, 카디건, 모자, 목도리, 가방을 만들어 아이 몸을 내 작품 전시장으로 마음껏 활용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대로 따라주지 않는 학생들과 씨름한 퇴근 후, 역시나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아이들이 잠든 후에 피곤한 몸을 움직여 무언가 쓸만한 것을 만들어내는 감각이 안정감을 주었다. 주어진 도안대로 바늘을 움직이면 그럴싸하고 쓸만한 결과물이 나왔고, 하루 종일 느꼈던 무능함과 무력감을 조금은 떨쳐낼 수 있었다.

직접 만든 휴대전화 가방이며 숄더백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퇴직 후에도 걱정 없겠다며 추켜세워 주시지만 그 정도 실력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예쁘고 실용적인 무언가 구상하는 힘과 그것을 구현해 내는 기술이 필요한데, 나는 도안 그대로 만들 줄만 아는 반쪽자리 니터(knitter)라서 그렇다.


앞으로 실력을 쑥쑥 키워서 퇴직 후에 이 덕질이 내 업이 되어 '덕업일치'를 이룰지는 모르겠다. 다만 소소한 바람이 있다면 필요한 실을 살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과 뭉친 어깨를 달래 가며 뜨개질을 계속할 수 있는 체력은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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