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초 준다, 실시!
실천22. 미루기 습관이 보여준 내 마음 살피기
나는 지금 개구리를 생각 중이다. 내가 먹어야 하는 개구리... 꼭 먹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너무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 날이 밝아오고 있다. 에잇,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이게 뭐람. 눈물만 찔끔 난다.
"당신이 개구리를 먹어야 한다면, 아침에 하는 게 가장 좋다. 만약 2개를 먹어야 한다면, 더 큰 놈을 먼저 먹는 게 좋다."
아는 사람은 아는 비유이겠지만, 여기서 '개구리'는 '가장 하기 싫은 일'을 뜻한다. 마크 트웨인이 남긴 말이라는데 가장 미루고 싶은 일을 가장 먼저 해버리고 가뿐한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라는 뜻일 것이다. 아마존에 찾아보니 <Eat That Frog!>라는 자기 계발서도 있던데, 나는 개구리는 고사하고 '자기 전 샤워' 같은 기본적인 일도 하루의 가장자리까지 미루고 또 미루며 괴로워한다.
'그냥 해버리면 마음도 편하고 시간도 아낄 수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러냐'고 도저히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짝꿍의 마음을 나도 알겠다. '아... 해야 하는데...'를 중얼거리며 누워있는 건 제대로 쉬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해낼 시간을 축내기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정말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내 몸은 자꾸만 따뜻한 이불속을 파고들거나 소파에 더 깊숙이 파묻히는 걸까. 왜 자꾸 '5분만 더, 30분만 더...', '지금 27분이니까 딱 30분이 되면, 아니 정각이 되면...' 같은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일어날 줄을 모르는 걸까. 그렇게 드러누워서 '미루기의 과학'이라는 장동선 뇌과학자의 영상을 보았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중에 볼 영상으로 저장' 해두었던 것을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보았다;;)
미루기에는 '놀기'위한 미루기와 '쉬기'위한 미루기가 있는데 전자는 에너지와 의욕은 넘쳐나지만 딴짓을 하느라 미루는 경우이고, 후자는 일을 시작할 의욕이나 에너지가 부족해서 하기 싫은 마음이 강한 경우라고 한다. 가만히 앉아서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미드를 보느라 할 일을 미루는 나는 아무래도 놀기와 쉬기가 섞인 변종 미루기 중인 것 같다.(낮은 에너지로 딴짓을 하는...)
혼자서도 심심할 틈이 없는 내 머릿속에는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이 너무도 많다. 게다가 그 일들을 잘하고 싶은 마음까지 가득하다. 지금까지 내가 발행한 글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림도 잘 그리고 싶고, 피아노도 잘 치고 싶고, 책도 많이 읽고 싶고, 글도 잘 쓰고 싶고, 좋은 엄마도 되고 싶고, 내가 업으로 삼은 일도 보람 있게 해내고 싶다. 그런데 그저 드러누워서 꿈만 꾸면서 괴로워하다가 부랴부랴 연수원 프레젠테이션 준비나 보고서 제출을 준비하는 꼴이 되고 만다.
우리 아파트에는 신청한 세대에게 작은 텃밭을 배정해 준다. 매년 방울토마토, 무 등을 심어 아이들과 재배하는데 순 지르기에 실패한 토마토 가지는 어지럽게 얽혀 열매가 빛을 받지 못하고, 솎아내기에 실패한 무는 열무처럼 작게 자란다. 내가 바로 익지 못한 토마토이자, 충분히 자라지 못한 무였다. 일단은 꼭 해야 할 일 몇 가지만 추려내어 그 일들에 집중할 때이다. 씻는 일조차 귀찮아하는 내 모습이 보여준 내 마음이다.
영상 속 박사님이 언급한 해결방법 중 하나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5초 안에 실행하기'가 있었다. 해야 하는 일이 보일 때 그 일을 할 수 있을 다른 시간대를 어떻게든 생각해 내려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5초가 지나면 내 뇌는 그 일을 하지 않을 100가지 이유를 생각해 내고 나는 또 녹아내린 인절미처럼 침대에 들러붙어 있을 테니, 빨간 모자 조교처럼 가차 없이 나를 굴려야 한다. 5초 준다, 실시!
무서운 조교님이 진짜 내 앞에 서 있는 건 아니라서 5초가 5분이 될 때도 50분이 될 때도 있었지만 '5초 준다, 실시!'의 마법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8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마무리했고, 서평단 책을 읽고 미션도 모두 제출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의 뒤로 밀려난 한 가지 일이 있으니 바로 자기 전 샤워하기! 나... 그냥 씻기가 싫었던 걸까. 음... 지금이 12시 22분이니까... 30분이 되면 씻어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