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소비를 가장한 나만의 심리전
지금 나는 소비자가 아니라 전략가다. 쿠팡에서 필요한 물건을 담고 보니 45,800원. 금액을 확인한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회로가 작동한다. 5만 원 이상 구매 시 받을 수 있는 쿠키(네이버 웹툰을 볼 수 있는 캐시)를 받기 위한 심리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차피 필요한 물건을 사는 거고, 조금만 더 채우면 공짜로 웹툰을 볼 수 있다'는 계산에 지금 당장 생각나지는 않지만 가성비 좋고 내일의 내가 만족할만한 물품을 찾아 스크롤을 끝없이 내린다. 정말 필요한 건 세제와 휴지였지만, 정작 가장 많이 고민한 건 나머지 4200원의 소비에 합리적인 이유를 붙이는 것이었다.
알라딘 서점은 또 다른 전장이다. '굿즈를 샀더니 책이 왔다'는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읽고 싶었던 책도 사고 이왕이면 예쁜 사은품도 받고 싶다. 문제는 가격대별로 사은품이 다르다는 것. 3만 원 이상이면 머그잔 또는 북커버, 5만 원 이상이면 감성 넘치는 우양산이나 크로스백(이게 진짜 필요하다고는 못 하겠다). '아직 안 읽은 책도 많은데 이 책이 지금 꼭 필요할까? 근데 이걸 담으면 머그잔에 우산까지 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 사무실에 두고 쓸 컵이 필요하긴 했어.' 벌써 10분째 이성과 감성 사이를 오가며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고, 저 책은 빼고, 아까 그 책을 다시 담는다. 이렇게 탄생한 장바구니는 독서 리스트가 아니라 사은품 최적화 시뮬레이션 결과물에 가깝다.
사실 웹툰은 한 편에 300원이고, 머그잔도 우산도 하나쯤은 이미 있다. 그런데도 나는 쿠키 3천 원을 위해 3만 원어치 고민을 하고, 굿즈 하나에 책 두 권을 더 얹는다. 왜 자꾸 이 반복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이건 오래전부터 이어진 심리학적 유산이다. 손실회피–공짜 캐시를 놓치면 괜히 손해 같고, 프레이밍 효과-‘추가 지출’이 아니라 ‘사은품을 얻는 기회’로 느껴지게 만드는 언어 마법.
물론 쿠키를 받아 웹툰을 보고 굿즈로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머그잔을 받아보면 뿌듯함이 스쳐 간다. 계획대로였고 손해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치 이겼지만 굳이 이겨야 했나 싶은 게임처럼 개운하지가 않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얻은 건 ‘합리적인 소비’라는 자기 위안이고, 사실 이 게임의 진짜 승자는 나에게 쿠키를 던져주고 굿즈를 흔들며 장바구니를 무겁게 만든 그들이라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마케팅 이론에 반응하는 소비 NPC가 되어 장바구니 전략가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번엔 3,200원이 부족하다. 다시 회로가 작동한다. 어쩌면 이 게임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로 계속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웹툰 한 편 보며 웃고, 예쁜 머그잔에 커피 한 잔 마시는 그 순간 때문에. 다음엔 정말 보고 싶었던 웹툰 한 편만 사서 읽어야겠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 한 권만 골라 결제하는 것도 설렐 것이다. 공짜 캐시도 사은품도 없지만, 그날만큼은 장바구니가 아니라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소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