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음으로 갈 수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고

by 빛별

태양이 점점 어두워지고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당면한 문제가 너무 클 때, 사람은 종종 생각을 멈춘다. 손대기엔 이미 늦은 것 같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류의 위기는 거대하지만 그 위기를 다루는 사고의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는 데 있다.


'인간은 비정상적인 것을 놀랍도록 빨리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다.'


이 문장은 이 소설의 세계를 단번에 설명한다. 멸망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다시 계산하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공포에 압도되기보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인류를 대표하는 위대한 지성도 아니고, 뛰어난 신체능력도, 타고난 리더십도 없다. 인정받지 못한 연구 논문만 남기고 과학계에서 사라진 실패자였고 지금은 평범한 과학 선생님이다. 그는 두려워하고, 실수하며, 상황이 버거워질수록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그는 실패를 감정의 크기로 재지 않고 다시 움직인다. '지금 내가 아는 것'과 '다음에 시도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조금씩 문제를 잘라나가기에 오류는 좌절이 아니라 다음 행동을 위한 단서가 된다. '스스로 얼마나 멍청한지 알만큼 똑똑해졌으니 그게 바로 진보'라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는 이상하게도 믿음을 준다.


책을 읽으면서, 자주 문제 앞에서 멈춰 섰던 나를 떠올렸다.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완벽한 계획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나은 해답이 아니라, 지금 가능한 만큼만 움직이겠다는 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고방식은 과학 문제를 넘어 관계로까지 확장되는데, 외계 생명체 록키의 등장이 그 전환점이다. 언어도 다르고, 감각도 다르며, 생존 조건조차 전혀 다른 존재를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은 록키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 소통은 늘 불완전하고 오해는 반복된다. 그럼에도 협력은 멈추지 않는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최소한의 신뢰이다. 서로를 전부 알지 못해도, 같은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연대는 가능해진다. 그렇게 둘은 어느새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나는 종종 '이해할 수 없음'을 이유로 관계에서, 또는 문제 상황에서 한 발 물러났다. 설명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너와 나는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로 더 많은 설명과 이해가 필요했던 걸까. 한 번 더 함께 문제를 바라보려는 태도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삶의 많은 문제와 관계는 끝내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예측은 틀리고, 설명은 부족하고, 마음은 자꾸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을 선택해야 한다. 지금 아는 것을 가지고, 지금 가능한 방식으로. 록키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문제 큼. 전부 해결 필요 없음.'

'조금 이해. 괜찮음.'

'너 여기. 나 여기. 같이 다음으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고 남은 건 이 단순한 태도이다.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어도 우리는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 이해가 부족해도, 계산이 틀려도, 누군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는 믿음. 그것이면 다음으로 가기엔 충분하다.


*3월 개봉 예정인 영화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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