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물들] 컵 잘 깨는 사람

컵과 함께 깨어지는 것들에 대해.

by 주연

동료들과 베트남 여행을 떠났다. 하노이에 도착해 거리를 거닐던 중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여행 중에 스타벅스의 시티컵을 모으는 것이 나의 취미인데 그래서 발견과 동시에 시티컵을 구매했다. 작은 시티컵을 사는 나를 보며 함께 간 동료들도 모두 구입해 인증샷을 찍으려던 찰나, 박스 입구를 잘 잡고 있지 못하던 내가 그만 와장창 컵을 깨버렸다.


이렇듯 나는 유독 컵을 잘 깨는 사람이다. 집에 4명의 가족을 생각해 4인 세트 컵을 사면 으레 1-2개만 남고 내가 다 깨뜨려버린다.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6인조 커피잔을 선물해 준 적도 있는데 그 6인조 역시 2인조만 남았다는 슬픈 이야기를 전한다. 어쩜 그렇게 잘 깨뜨리는지 나조차도 신기하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손에 미끄럼틀이라도 달려있는 건지 유독 설거지 중에도 일상생활 중에도 잘 놓친다.


컵은 깨져버리면 유리 조각이라 작은 파편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늘 꼼꼼하게 치워야는데 다 치웠다고 생각해도 어디선가 작은 파편이 나와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아내와 살다 보니 남편은 깨진 컵 치우는 도사가 되었고 ( 친정에서도 깬 적이 있는데 컵의 잔해를 치우는 남편을 보고 엄마 아빠가 어쩜 저리 잘 치우냐고 칭찬을 계속하셨다. 덕분에 컵 깬 나의 과오는 잊혔다는 웃픈 이야기) 아이들은 큰 쨍그랑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그저 빠르게 양말 신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뿐.


이렇게 컵을 잘 깨뜨리는 나는 사실 일상의 사소한 실수가 잦은 편이다. 어렸을 때는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작은 실수가 연발되어 덜렁대는 나 자신을 싫어했었다. 그러나 그런 실수들을 연발하면서 고군분투하는 나를 이제는 스스로 다독이며 보살피고 있다. 왜냐하면 컵 깨는 것과 같은 이런 실수들이 분위기를 바꿔주며 나를 편안하게 대해도 대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 남편과 연애 중에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꾸며놓은 북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테이블에 각자 음료를 시켜두고 책까지 펼쳐 읽어서 그런지 내내 테이블이 좁은 느낌이었는데 이동하려고 일어서려는 찰나 내가 마시던 음료의 컵을 바닥으로 떨어뜨려 와장창 깨뜨려버렸다. 그땐 남편과 연애 초창기였기에 내숭 떨며 예쁜 척만 하고 있을 땐데 그런 실수를 해 얼어버린 나를 보고 그저 웃으며 카페 주인과 컵 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편의 모습이 몹시 든든했다. 그래서 남편에 대한 내 마음이 더 활짝 열렸으니 그때 그 컵 잘 깬 거 같지 않나요? (하지만 그 뒤로 무수히 많은 컵의 잔해를 치우는 운명이 주어진 남편 미안해)


또 지난여름 교감 선생님의 시골집으로 동료 선생님들과 나들이를 갔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아무래도 직위의 차이가 있어서일까. 모두가 격식을 갖추어 예의 바른 이야기만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먹은 그릇을 정리하다가 그만 내가 또 와장창창 와인잔을 깨 먹었다. 모두가 조심하던 그 순간 와인잔을 깨버린 나 때문에 긴장의 끈이 살짝 느슨해지며 허당미 가득한 나를 놀리는 이야기로 대화가 전환되어 편안하게 웃는 분위기로 그날이 마무리되었다. 이 정도면 컵 잘 깬 거 아닌가요? 하하


이번 베트남 여행은 동료들과 함께였는데 모두들 바빠해서 예약이며 일정 등등을 주로 내가 담당해 예약했다. 그런데 사실 나 역시 베트남은 처음이라 막상 하노이에 도착하고 보니 인도와 차도의 구분 없이 달려드는 오토바이들의 물결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래도 일정을 짠 책임자이기에 이른바 ‘주연투어’가 되어 여행을 시작하려던 때 스타벅스 앞에서 내가 그만 와장창 컵을 깨버린 것이다. 낯선 풍경에 긴장했던 우리는 이내 나의 허둥댐을 놀리며 긴장이 끈을 다소 내려놓았다. 물론 내 이미지는 똑똑이에서 우당탕탕 여사로 추락했지만 우리 여행에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추가되었으니 이만하면 컵 잘 깬 거 아닐까?


이렇게 컵을 잘 깨는 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컵깨는 나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자꾸만 컵을 깨는 나를 미워했다면 이제는 이런 나를 받아들이며 컵 깬 것을 스스로 합리화하며 다독이고 살아가고 있달까? 왜냐하면 합리화조차 안 하면 이렇게 조심성 없는 나 자신이 미워지는걸요.

사실 컵을 자주 깨는 나는 나의 이런 부주의함이 조금 싫다. 하지만 그런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합리화를 해보단다. 이를테면 남편이 몸을 숙여 구석구석 컵을 치울 때 못내 미안하지만 나는 다른 사랑으로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또 내가 깨뜨린 컵들이 나에 대한 편견도 깨뜨리고, 나를 더 편안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게 한 시간들을 생각하며 나를 미워하지 않고 힘을 내본다. 컵은 잘 깨지만 다른 사랑으로 깨뜨린 컵을 채워보기로 결심하며 컵 잘 깨는 사람도 더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수희 글감은 ‘컵’이었다고 엄마는 컵을 잘 깨는 것에 대해 썼다니까 아들들이 입을 모아 엄마는 근데 컵만 깨는 건 아니지 않아,,,,? 라며 지난 나의 쨍그랑 역사를 읊는데 참 부인할 수가 없는 우당탕탕 여사입니다.


(@표지사진은 우여곡절 끝에 찍은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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