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힘든 누군가를 위로하는 문구이다. 나 또한 힘들 때 이 문구를 듣고 위안을 얻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더 힘든 일, 그 뒤 더 더 힘든 일을 계속 겪으며 이 문구에 화가 났다. 그리고는 과거를 돌아보며 깨달았다.
내가 감당하기로 결정한 거지 감당할 수 있는 힘듦이 오는 게 아니였네
온 마음을 주고 믿었던 사람이 나를 '보이지 않는' 칼로 내 '마음'을 난도질해서 내 피가 온몸을 적시도록 철철 흘리며 응급 수술까지 한 후 겨우 재활 치료를 하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데 다 회복하기도 전에 더 크고 예리한 '보이지 않는' 칼로 '마음'을 다시 난도질했던사건이 있었다.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한 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 세 번이 네 번이 되는 끝도 없이 더 성난 '힘듦'이라는 파도 앞에서 매번 바뀌었다고하며 바뀌지 않는 상대와 함께하는 건 너무 괴롭고 비참했다.
온 마음이갈기갈기 찢겨 애달프고 처절했다. 이 고충을 지인들한테 얘기한들 잠깐의 위로일 뿐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솔직히난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상대를 계속 믿은 내가 바보라는 것을.
인간관계, 행동, 감정 등 나한테 누군가가 시킨 적이 없었다. 모든 건 다 내 선택이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내 심신은 문드러지고 희망, 아니 겨우 회복을 향해 달려가는 내가 매번 끌어내려질 때 어떻게 대처를 하는 게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여전히 알듯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배울 게 있다지만 가끔씩은그 넓고 깊은 세상에 대해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차라리 몰랐으면 행복했기에 괜스레 서러운'오늘'이다.
그리고 그 '오늘'은 시간이 흘러도 드문드문 이어진다.
그럼에도 난 내가 감당하기로 한 이'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죽음은 불가피하고삶에 대한 큰 애착도 없지만 이미 주어진 인생이니 감사해하며 어떻게든 살아보련다.
무교지만 신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오늘만큼은 신께 기도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