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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맘 May 18. 2021

오점이 아닌 '특별한 점'

이런 것도 샘내나?

‘어머! 이게 뭘까? 왜 여기에 있을까?’     

꽁꽁 싸맨 속싸개 밖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딸아이 손을 꺼내 만져볼 때 나도 모르게 나왔던 말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모유수유를 할 때만 잠깐씩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젖을 먹으러 온 아이들은 항상 간호사의 손길에 의해 말끔히 씻겨져 있었고, 속싸개로 꽁꽁 싸맨 상태로 나에게 안겨줬다. 꽁꽁 싸맨 속싸개를 펼치면 아기가 부서질까 봐 아이 손을 꺼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딸아이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 손등에 점이 있었다.

눈에 보일까 말까 한 자세히 보아야만 알아챌 수 있는 그런 점이 아니었다. 앙증맞은 단풍잎 같은 손등에 제법 많은 지분을 차지할 만큼 멀리서도 보이고, 사진을 찍으면 딱 보이는 그런 크기의 점이었다.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 같지 않은 크고 선명한 점이었다.      


아이의 모든 것이 예뻐 보이는 내 눈엔 조그마한 아이 손등에 있는 크고 선명한 점마저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이 또한 어려서 자신의 손등에 있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냈다. 하지만 명절이나 가족모임이 있는 날엔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딸아이 손등의 점이 대화의 주제가 되곤 했다.

     

“괜찮아. 크면 다 없어진다.”     


딸아이의 손등에 있는 점에 대해 걱정 어린 말을 들을 때면 '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크면 손등의 점을 창피하게 생각할까, 자신의 오점으로 생각할까 평소 안 하던 걱정이 들곤 했다.




딸아이가 5살 때쯤 되는 어느 날.

“엄마, 내 손엔 왜 점이 있는 거야?” 하고 딸아이가  물어보았다. 언젠가 아이가 자신의 손등에 있는 점을 인식할 때쯤 물어볼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날이 온 것이다.     


난 이날을 대비하며 그동안 준비한 스토리를 딸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정빈이, 채원이는 천사였다가 엄마한테 태어난 건 알고 있지? 하늘에서 채원이가 엄마한테 올 때 하나님께서 채원이는 엄마 딸이라고 손등에 점을 콕 찍어준 거야~ 채원이를 잃어버리게 되더라도 이 손등의 점을 보고 엄마가 채원이를 금방 찾을 수 있게 말이야. 채원이 손등에 있는 점은 엄마 딸이라고 알려주는 아주 특별한 점이야. 

봐봐 멀리서도 아주 잘 보이지?”     


그날 이후로도 딸아이는 자신의 손등의 점이 생각날 때마다 묻고 또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난 ‘아주 특별한 점’이라고 처음 듣는 질문 인양 똑같이 답해주었다. 다행히 딸아이는 자신의 손등에 있는 점을 아주 특별한 점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어린이집을 다녀온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신체를 따라 그리는 것을 배웠는지 딸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가져온 달력을 가져와 그 위에 눕더니 자신의 몸을 따라 그려달라고 했다. 꽤 큰 달력인데도 아이 무릎 아래는 달력 밖으로 나와 따라 그려주지 못할 정도로 딸아이는 그새 많이 커져 있었다.        


딸은 내가 그려 준 자신의 신체 그림을 한참 보더니 그 그림 위에 자신의 몸을 세세하게 그려 넣기 시작했다. 딸은 자신이 입고 있던 팬티도 그려 넣을 참인지 고개를 숙여가며 입고 있는 팬티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자세히 보는 듯했다. 몇 번을 고개 숙여가며 팬티에 그려진 그림을 달력에 옮겨 그리더니 불편했던지 결국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 달력 옆에 놓고 제대로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5살 딸아이가 그린 자신의 모습

딸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니 그림에도 똑같이 오른손 손등에 있는 점도 빼놓지 않고 크고 선명하게 그려놓았다. 딸아이에게는 오른손 손등의 점이 감추고 싶은 이 아니라 내가 얘기해준 대로 특별한 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이 9살이 된 어느 날.

소파에 앉아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아들이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질문을 했다.
(거실에 있는 소파는 평소 아들의 사색 공간이다.)     


“엄마. 채원이 손등에 있는 점 지워주면 안 돼?”     


“왜~?”

(당황하지 않은 척 부드럽게~)     


“이제 점이 점점 흐려지고 있어. 그러니깐 지워주면 안 돼?”          


“아냐~ 채원이 손등에 있는 점이 없어지면 엄마 딸인 걸 알 수 없잖아~

정빈아, 채원이 손등에 있는 점이 지워졌으면 좋겠어?”          


“응!”

(단호한 대답)          


“왜~?”

(당황하지 않은 척)          


“채원이 점이 부러워서 그러지. 그러니깐 지우자~”        

  

사실 난 아들이 딸아이 손등에 있는 점이 부럽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서 좀 놀랬다. 어렸을 때부터 아들도 내가 딸에게 들려주었던 '특별한 점'에 대한 이야기는 같이 들었었다. 아들은 그동안 딸에게만 있는 특별한 점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고 아들이 앉아 있는 소파로 가서 아들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리고 아들 얼굴을 빼꼼히 바라보며 이야기 하나를 또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정빈아, 엄마가 해줄 얘기가 있어. 사실 정빈이도 엄마 아들이라는 표시가 있어. 어디 있는 줄 알아?”     


“아니~ 어디?”

(아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빤히 본다. 아들의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되는데... 아들 얼굴을 보며 계속 스토리를 만들고 있는 나)     


“눈 감아봐. 요~기. 요 점이 바로 엄마 아들이라고 뜻하는 점이야.”     


눈을 꼭 감고 있던 아들 얼굴에서 마침 오른쪽 눈 등에 조그마한 점이 보였다. 난 그 점을 콕 찍어 말해주었다. 아들은 평소 자신은 엄마의 아들이라고 표시해 주는 점이 어디 있나 몸 구석구석 찾아본 듯 대번에 알아들었다. 근데 아들은 내가 한 대답에 뭔가 의심이 생겼는지 또 물어보았다.      

          

“엄마, 근데 나는 왜 점이 이렇게 작아? 멀리서 엄마가 나를 찾아볼 수 없잖아?”          


“응~ 정빈이는 채원이보다 먼저 나오느라 손등에 점을 콕 찍고 나올 시간은 없었어. 그래서 정빈이가 엄마 뱃속에서 잠자고 있을 때 하나님이 요기 눈에 점을 콕 찍어준 거야~ 정빈이는 자는 모습이 엄청 예쁘거든. 근데 점을 크게 찍으면 정빈이가 잠에서 깨겠지? 그래서 하나님이 정빈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살살살 작게 콕 찍어준 거야~”     


“아~ 그렇구나”     

(아들은 내 이야기를 철썩 믿는 것 같았다.)


아들은 내가 지어낸 아들의 ‘특별한 점’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되었는지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아들의 불안을 종식시켜줄 만한 이야기를 추가로 해주었다.     


“정빈아. 정빈이 눈에 있는 그 점을 보고도 엄마는 하늘나라 가서도 정빈이를 찾을 수 있어. 정빈이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 위에 있는 점이 확실히 보이거든. 그러니깐 걱정 마~”     


“어~~!! 엄마. 그럼 우리 하늘나라 가서도 만날 수 있는 거야?”     


“그럼~ 엄마가 정빈이 눈에 있는 특별한 점을 보고 꼭 찾아낼 테니깐 걱정 마!”     


“나도 엄마 꼭 찾아갈게~”     


사실 아들이 딸아이 손등에 있는 점에 대해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책에 보면 오누이가 하나님이 내려주신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하늘나라에서 호랑이에게 잡혀먹었던 엄마를 만나는 부분이 있다. 아들은 그 부분을 보고 “엄마, 난 채원이처럼 점이 없는데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엄마가 나를 찾을 수 있지?”라며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들이 한 질문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황당해서 제대로 답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무 말 없는 게 대신 답을 해주었었다.      

“난 하늘나라 가서 엄마를 꼭 만날 거야. 내가 엄마 꼭 찾을 거야.”




아들은 9살이 되어서도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를 진짜로 믿는 순수한 아이다. 하늘나라 가서도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아이, 누가 나를 이렇게 사랑해줄까 싶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엄마의 특별한 점 이야기를 기억하며 오점보다는 특별한 점을 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며, 각자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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