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룰루랄라맘 May 20. 2021

남편, 나도 오빠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넌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어

“오빠, 물어볼 게 있어.”

아이들이 아직 자고 있는 주말 아침, 남편은 이미 거실로 나와 식탁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몇 년째 기회를 잡기 위해 중국어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주말 아침부터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평온해 보여, 그 모습에 궁금증이 발동해 나는 남편에게 질문을 했다.      


“오빠, 오빠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오빠보다 남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껴본 적 있어?”     


“아니,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물어봐?”     


“그래? 그럼 오빠는 막내잖아. 혹시 부모님이 아주버님을 오빠보다 더 위해준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아니, 그런 적 없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해?”     


“그럼, 오빠는 부모님께서 누구보다도 오빠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하하하하. 응.”     


남편은 한치의 의심 없이 단호히 대답했다.      


어릴 적 나는 우리 부모님이 나보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친척 동생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친척들 또한 나보다 언니와 동생에게 뭐든 더 해주는 것 같아 언니, 동생을 나보다 더 위해준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오래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준 상처에 자신의 스토리를 얹어 2차 가해를 자신에게 하는 사람도 아니다. 난 예전부터 남편의 이런 모습이 신기해 어렸을 때 어떤 생활을 하며 지냈는지 궁금해 종종 질문을 하곤 했다.       




남편의 집안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남편은 초등학교 때까지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해가 지면 호롱불을 켜고 공부를 해야 할 정도로 시골에 살았다. 농사일을 하신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고,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셔서 자주 집안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고 했다. 남편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들어온 날엔 또 어떤 소란이 벌어질까 두렵기까지 했다고 한다. 남편 얘기를 들어보면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집안이 평안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편의 성품을 보면 너무나 평온해 보일 때가 많았다. 나는 오늘 남편의 평온한 성품이 어디서 나왔는지 꼭 찾아내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질문을 이어했다.    

  

“오빠, 그럼 오빠한테 집은 어떤 곳이었어?”     


남편은 잠시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는 듯 눈을 위로 치켜떴다. 남편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고 한다. 남자 고등학교라 선배들의 군기잡기로 기숙사 생활이 편하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집에 가면 시어머니는 남편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좋아하는 꽃게찜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고 했다. 시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저녁을 먹을 때 참 좋았다고 했다. 또한 집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기에 집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아버님이 술을 마셨는데 집이 편안했어?”     


“그래서 이틀 동안 집에 머물기는 힘들었지. 하하하. 그래도 하루정도 있기엔 집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어. 어머니도 많이 안타까워하셨을 거야. 아들을 하루라도 더 편안하게 있게 해주시고 싶으셨을 텐데 말이야. 아버지가 술을 드시니 어쩔 수 없었지.”     


“또, 뭐가 기억나?”     


“음... 하룻밤 잘 자고 일어나면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오이무침을 아주 맛있게 무쳐주셨어. 아침 준비로 부엌에서 딸그락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는 것이 너무 좋았어.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을 든든히 먹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 공부를 할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 같아.”          




어느 날 남편이 밖에서 겪은 일을 얘기해줬는데 만약 내가 그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며칠 동안은 일상에 영향을 받았을 텐데 남편은 하룻밤 잘 자고 일어나더니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와 출근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참 신기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남편과 대화를 통해 남편의 그런 회복 능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게 되었다. 

남편은 온전히 자신을 위한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을 받고 자랐다. 또한 집에서 떠나올 때면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용돈에 혹시 아들이 부족할까 걱정돼 어머니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좀 더 더 넣어줘.’ 말씀하시는 아버님을 보며 부모님의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그 사랑이 탄탄한 뿌리가 되어 어떤 상황에서도 남편은 신기할 정도로 빠른 회복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남편의 그런 회복력이 부러워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나도 오빠처럼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넌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어.”     


남편의 대답은 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 

Image by Picography from Pixabay

주말 아침, 남편을 통해 내 아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알게 되었다.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탄탄하게 지탱해줄 뿌리를 만들어 주는 것,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해줄 일이다. 그것이 엄마로서 나의 사명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주말 아침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오점이 아닌 '특별한 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