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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맘 Jun 02. 2021

육아휴직 끝을 앞두고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었다

옷장을 열어보았다.

2년 넘는 공백기를 끝내고 회사에 복직하는 날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긴팔 티셔츠, 반팔 티셔츠, 봄/가을용 레깅스, 여름용 레깅스, 겨울용 레깅스들이 보였다. 육아휴직 동안에는 티셔츠와 레깅스만으로도 충분했다. 한쪽으로 밀어 놓았던 회사 다닐 때 입었옷들을 꺼내 몸에 대어 보았다. 영~ 어색하다.


이런 옷들 내가 2년 전에 입고 다녔었나 싶을 정도로 내 옷이 아닌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당장 입고 나갈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안 그래도 오랜 공백기를 뚫고 회사에 복직하는 것이 설레기도 했지설레는 것 이상으로 어색함도 느껴졌다. 옷까지 나의 어색함에 보태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복직해 회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출산 전 입었던 바디라인이 드러나는 블라우스와 스커트들 또한 나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회사 다닐 때 신었던 구두들이 색깔별, 모양별, 계절별로 짝 맞춰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여전히 7cm, 9cm 굽의 구두들이 신발장 대부분의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편해 보이는 구두를 꺼내 신어 보았다. 육아휴직 동안 여름엔 크록스, 그 외 계절은 운동화만 신었기에 얄쌍한 구두가 발에 잘 들어갈까 싶었다. 다행히 발은 들어갔지만 발 전체를 조여 오는 듯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내리막길에선 넘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자리걸음도 해보았다. 어색했다. 구두를 신은 내 다리는 무척 불안해 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했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구두를 신고 출근하기엔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 발이 편해야 했다. 순간 운동화를 신고 갔다가 구두로 바꿔 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불가능한 일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쌍둥이들 어린이집 가방에 이불가방에 내 가방에 가방만 5개다. 더 이상 짐을 늘릴 수는 없었다.      


어색한 옷차림에 어색한 구두를 신고 어색한 걸음으로 어색한 아우라를 온몸으로 뿜으며 회사에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2년 동안의 육아휴직을 잘 마치고, 이젠 복직하러 왔다며 당당하게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과 구두들은 불편함과 어색함으로 나를 당당하고 멋진 워킹맘으로 만들어주지 못했다.

         

화장대 앞에 앉았다.

옷과 신발의 어색함에 화장도 미리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수를 하고 스킨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에센스와 로션을 바르고, 선크림도 바르고...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선크림 다음으로 손이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선크림 다음으로 뭘 발랐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우선 얼굴 베이스부터 화사하게 해야 하니 쿠션을 발라봤다. 썩은 것 아닌가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선 우선 발라줘야 했다. 너무 번들거리는 것 같아 팩트도 있길래 팩트로 얼굴을 꼭꼭 눌러 번들거림을 잡아본다. 벌써부터 거울로 어색한 내 얼굴을 영접하게 된다. 2년 동안 꽂혀만 있던 펜슬로 눈썹도 그리고 아이섀도로 눈두덩이를 칠해 본다.      


“가관이다. 정말 화장 못한다.”     


‘가관이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그냥 나왔다. 2년 전에도 이렇게 화장을 하고 다녔었나 싶어 얼굴이 화끈거린다. 예전엔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도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더 이상 어색해 아이섀도 다음 단계로 진도를 갈 수 없었다.      


총제적 난국이다. 

입고 갈 옷, 신고갈 구두, 화장까지 뭐하나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동안 내 옷은 아이들 피부에 안전한 순면티로 팔 길이만 다르게 갖춰져 있었고, 두 아이를 동시에 안아도 될 만큼 편안한 운동화로 세팅되어 있었다. 아이들 얼굴에 묻을까 화장을 할 생각조차 아예 지 않았다. 아이들을  씻기고 나면 피부가 해 바로 건조해지지 않을까 싶어 아이들 먼저 발라주고, 손에 남아있던 크림으로 내 얼굴도 발랐었다. 화장대에 앉아  순서대로 바를만한 여유가 그동안 나에겐 생기지 않았다. 화장대의 화장품은 2년 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5일 동안 번갈아 입을 옷 3벌은 적어도 필요했고, 옷에 어울리는 낮은 굽의 편한 신발도 필요했다. 화장품도 유통기한이 지나 다시 사야 했다. 회사 동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부담 주지 않은 예의(?) 있는 화장법도 연습해야 했다.


나의 복직을 응원해주는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옷과 신발, 화장품 준비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복직을 앞두고 내가 아이 곁에 없는 시간 동안 엄마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준비했지 정작 복직해야 하는 내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복직을 앞두고 제일 마지막으로 나를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육아휴직 2년 동안 직장인에서 엄마로서 잘 적응하고 생활해 왔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복직은 엄마에서 워킹맘으로 적응할 시기가 왔을 뿐이다. 직장인에서 엄마로 잘 적응했던 것처럼 엄마에서 워킹맘으로도 잘 적응할 것이라 믿는다.  


우린 누구보다도 강한 엄마니깐.

(식상한 말이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엄마가 되어보니 이 말만큼 엄마를 잘 나타내 주는 말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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