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찌릿찌릿하다. 장갑을 끼고 있어도 손끝이 시려온다. 아이들은 추운지도 모르고 놀이터에 있는 놀이기구를 번갈아 타며 좋아한다. 장갑을 낀 내손도 이렇게 시린데 맨손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손 시린 줄 모르고 잘도 논다.
6살이 된 아이들은 이제 몸도 웬만큼 단단해져 놀이터에 있는 놀이기구들을 내 도움 없이 맘껏 가지고 논다. 아이들이 크면서 놀이터 동행이 많이 편해졌다. 미끄럼틀 타겠다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된다. 엉덩방아를 찢지 않을까 걱정돼 미끄럼틀 앞에서 지키고 서있다 내려오는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6살 된 아이들이 엄마의 손에서 완전히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네를 탈 때면 밀어달라고 항상 나를 찾는다. 손이 얼어 잘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펴 그네에 앉은 아이 등을 밀어준다. 아이는 장갑도 끼지 않는 손으로 차디찬 그네 쇠줄을 잡고 추운지도 모르고 함박웃음을 짓고 좋아라 한다.
‘그네도 혼자 타는 날이 오겠지.’ 아이가 원하는 만큼 그네를 밀어준다. 그네만 타면 오늘 놀이터 투어는 마무리될 줄 알았다. 아이는 다시 놀이터를 빙 둘러보더니 다시 미끄럼틀로 뛰어간다. 절대 걷지 않는다. 이제는 놀이터 투어가 쉽게 끝나지 않은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패딩을 입고 나온 것이 다행이다. 패딩 점퍼에 달려 있는 모자를 단단히 조여 매고 벤치에 다시 앉아 아이들이 다 놀기를 기다린다. 아이들이 나를 찾는 횟수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 눈은 아이들의 동선을 따라다니느라 여전히 바쁘다. 눈만큼은 아직도 편히 쉴 수는 없다.
충분히 놀았다는 말을 아이들에게서 듣기는 힘들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질질 끌고 집으로 데려오고 싶지도 않다. 30분 전부터 아이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10분 단위로 알려준다. 아이들은 알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전혀 듣지 못한 듯 아이들은 여전히 신나게 뛰어논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나의 노고가 아이들 마음에 닿았는지 아님 남은 시간을 미리 알려준 것이 먹혔는지 아이들 표정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본다. 내가 바라던 모습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혼자 책 보는 모습을 상상하며 매일 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매일 아이들 책을 읽어주며 나도 내 책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읽어주려 했다. 드디어 내가 바라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니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없었다. 덩달아 조용하고 평온한 집안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 보는 모습이 내 눈엔 너무 예쁘게 보여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었다. 아이들이 혼자 책을 보면 내 책을 읽겠다는 나의 바람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 사진을 찍기 바빴다. 곧 나의 이런 행동들이 책을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아이들이 책을 보고 있을 때는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줄 아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내 잔소리도 점점 늘어 갔다. 집중해서 뭐든 하고 있는 아이에게 이 닦으라 하고, 간식 먹으라 하고, 보던 책 좀 정리하고 보라며 아이가 집중하고 있는 시간을 끊어 버린다. 굳이 지금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내 입은 근질근질하다. 아이의 집중을 끊는 사람이 엄마인 내가 아닌가 싶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이제 그만 자자고 말하고 싶었다. 또 아이가 하는 행동을 끊고 싶었다. 아이는 내 생에 마자막 작품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입에서 침이 흘러나오는지도 모르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지금 자신이 가진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맘껏 그리다 잠들도록 내 입을 꾹 다물고 기다려 주었다.
진정한 몰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일어난다고 한다.
놀이터 놀이, 책 보기, 그림 그리기 등 아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모든 행동에서 아이는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무엇을 하든 아이가 몰입하고 즐기는 모습을 볼 때면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몰입이라는 경험을 아이가 맘껏 해보길 바랬다. 아이들이 무언가에 몰입해 있으면 집안은 조용해지고 평온해진다. 몰입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 행복을 경험을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들도 꼭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