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랑 Feb 14. 2020

5G 시대에 2G(투지)로 살아남기

점들은 모여 선이 된다.

요즘 남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괴롭다. 누군가는 미친 소리라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시간 부족이니깐. 너도나도 시간이 없어 못하는 게 투성이라는데 나는 넘쳐나는 시간 속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시간이 없을 땐 시간만을 위해서라면 뭐든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넘쳐나는 요즘 이걸 어떻게 잘 사용해야 할지 몰라 괴로운 것이다.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은 다를 것이다. 어떤 시간은 빨리 흐르고 어떤 시간은 느리게 간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리고 시간의 양은 삶에 대한 만족과 행복감과 비례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온전히 그 시간을 무엇을 하는데 쓰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달려있다. 그러니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데 시간을 써야 한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중요하다. 돈의 가치도 시간에 따라 변하고 천금 같았던 사랑의 추억도 시간이 지나면 바래지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간이라는 것을 추상적인 개념이라기보단 실체가 있는 숫자로 인식하고 지낸 온 날들이 많다..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과제를 하고 3시부터 6시까지는 책 읽기. 저녁식사 후 1시간은 꼭 요가 하기. 이번 주 토요일 2시 홍대에서 친구 만나기. 이렇게 편리성을 위해 숫자를 부여한 시간 때문에 우리는 종종 잊는다. 그 시간의 흐름과 쌓임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시간은 자신의 존재를 내비치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인간이 받은 축복 중 하나라는 망각 능력. 시간은 인간의 부족한 기억력을 대신하여 삶을 기록해주는 기록기와 같다. 시간이 지나온 길은 곳곳에 이정표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은 꾸준함이란 놈과 맞물리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어제는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자수성가 청년의 비디오를 보게 됐다. 23살 늦은 나이에 지방대 문과 진학. 못생긴 외모로 인한 열등감. 소위 말하는 흙수저. 29살 나이에 군입대. 불치병까지... 누가 봐도 악조건 속에 꿋꿋이 걸어온 그의 모습이 정말 감명 깊었다.


우리가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는 시점은 이미 성공이라는 결과물이 완성된 이후이다. 성공을 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1-2시간의 강연으로 그들의 인생을 압축해서 듣고는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는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은 20대라는 10년을 바쳤고, 어떤 사람은 평생을 바쳐서 그 하나의 성공을 이뤄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바라본 그 점은 기나긴 선의 끝 단면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음지에서 묵묵히 어떤 시련과 고난도 견디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온 것이다. 그 노력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성공이란 결코 아무나 거머쥘 수 없는, 인생의 마라톤 끝에 수여되는 고귀한 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나는 그 점을 잘 찍고 있는가가 궁금해졌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중간에 찍다 멈춰버린 점들이 많았다. 하다 보니 내 적성과 안 맞아서, 먹고사는 게 바빠서, 피곤해서, 갖가지 이유로 그만둬버린 일들.. 그래서 내가 여기에 멈춰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한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 이리라. 말은 쉽지만 이 고요하고 외로운 가시밭 길을 뚫고 나아가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지금까지 깨작깨작 해오던 일들이 있다. 아직 빛을 본 것은 하나도 없다. 누군가는 나에게 말할 것이다. 하루 종일 쓸데없이 뭐하냐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당장 어디라도 취업하라고.


하지만 나는 말한다. 지금의 나는 무수히 많은 점들을 찍어야 할 때라고.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찍힌 점들은 어느 시점에 선으로 이어져 있을 거라고. 처음에는 짧았던 이 선이 마침내 하나의 긴 선이 되어 있을 거라고. 그때까지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나아가겠다고. 시간의 힘을 믿는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