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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Feb 14. 2020

새로운 사실이 태어나기 전 반드시 영혼의 어두운 밤이

30대, 재취업에 대한 단상

나는 29살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출퇴근은 잘했지만 진짜 잘 다닌 건 아니었다. 남들은 워라밸이 지켜지며 일도 재밌어 보인다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지루하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내가 진짜로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취준생일 땐 그저 빨리 어딘가에 들어가서 돈을 버는 '사회적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입사지원을 했고 운 좋게 면접이 잡히면 그때부터 회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채로 '어른'이 된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일을 통해 얻고 싶은 건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더 이상 반복되는 업무와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 속에 멈춰있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일랜드로 떠났다. 뒤늦은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내가 누군지 궁금해졌고 30대를 맞이하기 전 이 궁금증을 외면하고 주어진 일상에 안주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길이라는 걸 알았다.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려면 내 주의를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의지가 강한 사람은 아니니까. 1년 동안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았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나는 생각보다 위기 상황에서 강인함을 발휘하고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은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배운 것들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인생공부였다고 말하고 싶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어찌 보면 생존 법칙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길다면 길었던 1년의 갭이어 끝에 도전하고 싶은 분야를 찾았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자괴감이 드는 건 왜일까? 안될걸 알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까? 아니면 어떻게 해야 나를 잘 팔리게 할지 고민하는데서 오는 거부감일까? 대기업들마저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개인 미디어의 범람기.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니 나를 좋아해 주세요'라고 설득하는 게 여전히 어렵다.


그 이유는 첫 번째, 나는 자기 어필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진심과 본질이다. 진심과 본질이란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존재하는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소리치지 않는다면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왜냐면 무한 경쟁 사회에서 공급자가 많을 때 수요자는 열심히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급자는 자신만의 색다른 무기 아니면 적어도 큰 목소리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고 자기 어필의 중요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 씁쓸하다.


두 번째는 인정하기 싫지만 나의 무능력이다. 나에게는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 있다. 부단히 노력했지만 성공 목전에서 고꾸라진 경험. 누구도 원망할 수 없고 나 자신만을 탓했던 그 시간들.. 그 지옥 같은 시간을 빠져나와 다시 살아내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데인 경험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내릴 때마다 나를 안정적인 선택으로 인도했다. 그때는 그런 소소한 일상이 감사하고 즐거웠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하지만 이제 자신감을 회복한 나는 다시 뭔가를 도전해보려고 꿈틀대고 있다. 어쩌면 이게 나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힘든 시간을 겪었고 천천히 소화해 냈기에 비로소 이룰 수 있었던 재생. 그런데 이런 내가 마주한 한 가지 잔인한 진실은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 동안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충족하지 못한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 밤을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가 문제이다. 추상적인 고민은 이미 오랜 시간 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런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속될 뿐 그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두렵지만 내 무능함을 직시하고자 한다. 어쩌면 나는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만 옆에 두려 했고,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남들에게 미뤘으며, 항상 적당히 타협해왔는지도 모른다. 계속 이런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이다. 좋은 사람과 무능한 사람은 다른 거니까. 


이 밤이 더 어두워지길 바란다. 어둠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이겨내기를. 그래서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나와 다시 세상에서 빛날 수 있길. 그런 희망을 가슴에 별처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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