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 요양원, 요양등급...

by 루씨

요즘은 **병원에 한번 갈 때마다 새로운 간병 용어들을 배워온다. 요양원과 요양병원과 재활병원, 요양급여와 요양등급신청 등등 설명을 들어도 알쏭달쏭한 단어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이런저런 기관에 전화해 더듬거리며 익혀나간다. 저 낯선 단어들 중에 내게 필요한 기관과 서비스는 어떤 것인지 잘 분별해 내기 위해서다.


오늘은 오전에 담당 주치의를 만나서 입원 연장을 의논해 보려고 아침 일찍 남편과 집을 나섰다. 주치의는 소화기 쪽에 증상이 없으니 더 이상 입원은 어렵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종합병원은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인데 어머님은 더 이상 치료해 드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의사의 말을 들으면 환자가 마치 꾀병이라도 부리는 듯이 들리지만, 침대에 누워계시는 어머님을 보면 걷는 것은커녕 앉지도 서지도 못하시고 식사도 혼자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대로 퇴원하면 누군가가 24시간 환자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알아본 곳이 재활 병원이었는데, 가족 면회가 주 2회, 회당 30분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사실 그건 핑계에 불과한 건지도 몰랐다. 아버님은 어머님을 재활병원에 입원시키면 방치하는 것 같다며 내켜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오늘 다시 알아본 기관은 요양원이었다. 요양원은 의료기관이 아니라 노인요양시설로 분류된다. **병원에서도 멀지 않고 부모님 댁에서도 가까운 곳을 방문했는데 규모는 크다할 수 없지만 재활병원보다는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로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한쪽에서는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도 계셨다. 병실에 있는 4개의 침대 중 세 곳에는 주인이 있었고 창가 쪽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부원장님이 안내문을 주며 입소에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설명해 주었는데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재활병원보다는 더 신뢰감을 주었다.

올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어머님의 상황으로 판단하건대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요양등급 심사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요양등급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1~5등급으로 나뉘는데 치매진단을 받거나 골절 수술 이력이 있으면 등급을 받을 수 았다고 했다. 그 말은 곧, 아직 정상적인 인지능력을 유지하고 있고 수술 이력이 없는 시어머니의 경우는 등급 진단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일단 요양원을 통해 건강관리공단에 등급 심사 신청을 했다. 만약 등급을 받으면 요양시설 이용료는 믈론 간병인 방문, 의료기구 대여 등 장기 요양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부원장님은 '요양시설 단기이용 제도'라는 것도 있다며 주민센터에서 신청해 보라고 안내해주셨다. 일 년에 14일간 요양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인데 등급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중위소득 100%'이하인 노인가구는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뭔가 희망적인 제도인 듯했지만 대체 '중위소득'은 어느 정도의 소득을 말하는 것이며, 그중 50%나 70%와 100%의 차이는 무엇일지 얼른 이해하기 어려웠다. 검색해 보니 '중위소득'이란 1인~4인 가구별로 중간값에 해당하는 소득으로 해마다 새로 산정되어 발표된다. 그러니 올해 2인가구 소득의 중간값인 3백만 원 정도 이하면 이용 자격 대상이 된다. 이렇게 앞으로도 여러 개의 허들을 넘어가며 간병 용어들을 익혀나가게 될 것같다.


오전 반차를 내고 온 남편은 11시쯤 되어 회사로 가고 나는 아버님과 함께 주민센터로 갔다. 담당직원이 업무에 익숙지 않아 좀 애를 먹었지만 무사히 '요양시설 단기이용 신청'을 마치고 주민센터를 나와 갈빗집으로 갔는데 아침부터 너무 진을 빼서인지 배는 고픈데 입맛이 없었다.

아버님은 식사를 하시며 막걸리를 드셨다. 사실 먼저 아버님께 약주 한 잔 하시겠냐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혹시 병원에 들어갈 때 문제가 될까싶어 권해드리지 못했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먼저 막걸리를 주믄하신 것 같았다. 그냥 먼저 시켜드릴걸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참 안 변한다. 잠시 변한듯 했다가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런 내가 참 싫었는데 이제 원래 그런 거라고 받아들인다. 가끔이라도 나와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거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점심 후 병원으로 돌아가 어머님의 식사를 도와드렸다. 그라고 드라이 샴푸까지 마치고 나니 정말 진이 빠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히지도 않았는데 눈이 절로 감겼다. 잠을 쫓으려고 멀리 바라보니

한강이 늦여름 햇살에 반짝이며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