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머니가 퇴원하는 날이다. 한 달 하고 이틀 만에 병원을 나오게 되었다. 퇴원 후 집으로 모셔다 드릴 수 있었다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달 전 입원할 때는 적어도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상태에서 퇴원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는데, 퇴원수속을 하는 오늘까지도 어머님은 침대를 세우지 않으면 앉아계시기도 어렵다. 이런 상태로 집에서 간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머니는 아직 장기요양 등급 신청도 하지 않은 상태라 상주 간병 서비스를 받을 수도 없고, 집에는 등받이를 세울 수 있는 환자침대도 없다. 이런 환자용 침대도 요양등급이 있어야 장기 대여가 가능하다.
그러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집과 가까운 요양원이 떠올랐다. 자주 면회할 수 있고 응급상황에 대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퇴원 직전 까지도 어머니께 요양원으로 가게 될 거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나가고 싶어 하셨지만, 그다음 행선지가 '집'이 아닌 다른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휴가를 낸 남편과 함께 아침 일찍 병실에 도착했더니 아버님께서 짐을 정리해놓고 계셨다. 잠시 후 주치의 선생님이 오셔서 퇴원 전 마지막 회진을 하며 세끼 식사를 잘 챙겨드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액을 맞지 않는 상태에서 식사가 부실하면 콩팥 수치가 급격히 나빠지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투석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입원 연장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난감하긴 했지만, 그것만 뺀다면 **병원에서 치료와 간호를 잘 받았던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입원기간과 쾌적한 시설, 의료서비스의 질을 생각한다면 **병원이 공공의료기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퇴원수속을 밟는 동안, 남편은 병원에서 쓰던 짐을 차에 실어 날랐고 나는 침대 등받이를 세워 어머니를 앉혀두고 샴푸를 시작했다. 비닐장갑을 끼고서 무스 같은 샴푸 거품을 머리카락 위에 얹고 문지른 다음 물수건으로 깨끗이 털어 말렸다. 샴푸 후에는 거품 없는 클렌저로 얼굴과 목도 닦아낸 다음,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대로 얼굴 경락 마사지를 했다. 어머니는 내가 손을 펼쳐 관자놀이에서 귀 뒷바퀴까지 쓸어내리는 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계시더니 "고객님. 이제 마사지 끝났습니다!"라고 말하니까 가만히 웃으셨다. 내가 잘 알고 있던, 낯익은 표정이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병실 천장을 쳐다보고 계시는 어머니가 낯설기만 했는데, 아주 오랜만에 '진짜 어머니'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잠시 울컥했다.
옆에 서 계시던 아버님이 "여보. 이제 자리를 옮겨야 해. 아파도 자꾸 다리를 움직이고 운동을 해서 걸어야 집에 갈 수가 있어."라고 말씀하시니 어머님은 어디를 자꾸 옮기냐고 하셨다. 아버님이 어제 요양원으로 옮긴다고 말했다고 하셨는데 어머님은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아까 샴푸하고 난 후, 핸드폰에 저장된 손녀들의 사진을 보시고는 "우리 ○○는 언제나 풍부해. 애기 때부터 그랬어" 라며 느릿느릿 말씀하셨다. 소매 없는 티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큰딸의 사진이었다.
어머니는 지난달 입원하신 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었고, 말 대신 손가락이나 눈동자만으로 의사표현을 하신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의사표현이 어려운 환자처럼 보이지만, 손녀들의 사진을 보여드리면 "잘 있대냐?" "잘할 테지. 얼마나 똑똑한데" 이렇게 관심을 나타내신다. 그럴 때면 어머님이 곧 회복하셔서 당신의 집에서 우리를 맞아주실 것만 같다. 하지만 바깥바람을 쐬려고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앉힐 때면, 어머님은
발걸음을 떼는 것은 고사하고 아버님께 안기는 것조차 힘겨워보이신다. 또 휠체어에 앉으신 후에도 고개는 자꾸만 좌우로 기을어진다. 그때는 믿기지 않는 현실과 체념이 번갈아 오가며 판단을 흐리게 한다.
우리 안에는 대체 몇 명의 '내'가 살고 있는 걸까. 건강 상태에 따라, 너무나 낯선 존재들이 얼굴을 내민다. 지금 내가 '나'로 알고 있는 존재는 몇 년 전에는 없던 '나'였다. 또 몇 년 뒤에는 지금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다른 존재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과연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모든 것이 '잠시' 벌어지고 있는 일일 뿐이다.
병실에서 휠체어를 타고 차 안으로, 또 차에서 내려 다시 인근의 △△ 요양원으로 이동했다. 어머님은 휠체어를 탄 채 요양원 실내로 먼저 들어가시고 이버님과 남편과 나는 로비에서 긴 설명을 듣고, 여러 장의 종이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요양사에게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봉투와 옷과 기저귀를 건네주었다.
이로써 퇴원과 요양원 입소가 끝이 났다. 아버님과 남편과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버님 댁으로 가는 동안 차 안은 조용했다. 아마도 낯선 요양원에서 첫날을 보낼 어머님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더 나은 선택지는 없었을까,
집을 나서는 남편과 나에게 아버님은 낮은 목소리로 배웅해 주셨다.
"그동안 애 많이 썼다. 얼른 가서 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