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두 번째 입원하신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소화기내과에서는 다음 주쯤 퇴원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골절된 척추가 붙지 않아서 혼자서 일어설 수도 없는 상태이지만 종합병원 규정상 단순 요양이 필요한 환자를 한 달 이상 입원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항생제와 수액을 맞고 있어서 호전되고 있을 뿐이지 약물 치료 없이 집에서 간호하다가는 언제든 다시 응급실로 실려올 수밖에 없다고 말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응급처치와 재활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요양병원을 몇 군데 알아보았고, 오늘 오후에는 아버님과 직접 병원을 찾아가서 시설을 둘러보기로 했다. 요양병원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지만 오픈한 지 3년밖에 안되어 깨끗하고 친절하다는 블로그 리뷰를 떠올리며 진정시키려 애썼다.
상담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재활운동실과 입원실을 둘러보았다. 시설은 그렇다 쳐도 일단 노인 환자분들과 간병인들만 있는 공간에서 뭔가 암울한 분위기가 배어 나왔다. 요양병원에서 웃고 있는 사람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60대쯤 되어 보이는 여의사뿐이었다. 증간 충에서 휠체어를 탄 환자가 의사의 가운에 수놓아진 이름을 보고 뭐라고 웅얼거리자, 의사는 환하게 웃으며 "아 그래요? 반갑습니다" 라며 받아주었다. 아마도 할머니의 성씨와 같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분명 바람직한 의료진의 태도이긴 한 것 같은데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안내직원과 함께 탄 우리를 의식한 친절일 거라는 의심은 분명 요양병원에 대한 편견이었을 것이다.
진실이 무엇이었든 간에 나는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프고 늙는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안내받은 6인 병실에는 같은 환자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하나같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고, 그 옆에는 간병인들이 슬리퍼를 신고 침대 사이를 다니고 있었다. 그중의 한 명이 병실을 들여다보는 우리를 향해 안으로 들어오는 건 안된다며 제지했다. 난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그대로 꾸벅 인사를 하고 바로 뒤로 물러났다.
8층의 재활실은 초등학교 강당쯤 돼 보일 만큼 넓었다. 물리치료사들에게 몸을 맡긴 채 팔 자리 관절을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고, 조금 나은 경우는 혼자 운동기구에 올라가 자전거 타기를 하거나 발걸음 떼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시설을 다 보고서 아버님과 함께 다시 상담실로 들어가는데 마음이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6인 병실이나 재활운동실, 바깥바람을 쐬는 공간인 옥상이나, 누워서 몸을 씻어준다는 샤워실 그 어느 곳에도 어머니가 계시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어머니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고 내가 병원을 방문한다 해도 환자들 사이에서 어머니를 찾아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입원하는 건 어렵다고 하고 그렇다고 집에 모시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재활병원이라는 곳을 알아보았지만 막상 보고 나니 입원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버님은 무겁게 입을 떼셨다. "재활병원은 아닌 것 같다."
병원에 도착한 다음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바깥으로 나왔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벤치 있는 곳에 휠체어를 세우고 드라이 샴푸를 꺼냈다. 무스 같은 거품을 머리 위에 얹고 머리카락을 비비듯이 털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두피를 꾹꾹 눌렀더니 눈을 감고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셨다. 물로 샴푸를 할 수 없으니 허리가 낫기 전까지는 아쉬운 대로 이렇게라도 간지러움을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비닐장갑을 벗고서, 어머니에게 딸들의 사진을 보여드렸다.
"어머니, 예쁘죠?"라는 내 말에 어머니는,
"예쁘지."라고 겨우 입을 떼셨다.
올 설에만 해도 손녀들에게 세뱃돈을 주시며 즐거워하셨었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이렇게 낯선 환자의 모습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만 계셔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한편으로 내 마음도 오락가락했다.
어머님의 투병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가도, 혹시나 내가 힘든 상황을 다 책임지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어제오늘 연이어 병원에 있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겨우 마음이 놓이면서 피곤과 불안이 점차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