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과 살아지는 것

by 루씨

**병원 진료예약이 되어있어서 10시쯤 시댁에 도착했다. 어머님이 허리 보호대를 감고 계시길래 여쭤 보았더니 아침에 일어나시다가 허리를 삐끗했다고 하셨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아버님과 내가 어머님의 양쪽 어깨를 부축하고 집 앞에 세워둔 차로 이동하기까지 십여분쯤 걸렸을 것이다. 하필 오늘 같은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우산을 받치며 부축하느라 셔츠가 쫄딱 젖어버렸다. 하지만 진료시간에 맞추기 위해 바로 운전석에 앉아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대기실에서 휠체어를 타고 기다리시던 어머님은 고통을 호소하시며 아버님께 누울 곳을 찾아보라고 하셨지만 주변엔 아무리 둘러봐도 그럴만한 공간이 없었다. 난 이 상황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론 지난번 서울대 병원 방문 때 주차장에서 진료실까지 어머님을 부축해서 가느라 애먹은 걸 생각하면 오늘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어서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담당의사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더니 환자의 담낭과 췌장이 만나는 부분에서 작은 덩어리가 발견되었고 콩팥수치와 염증수치가 높아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확히 병명을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누워만 계시니, 바로 이런 걸 두고 '노환'이라고 한다 싶었다.

여기까지는 소화기 내과의 영역이고, 어머님의 허리 상태를 의뢰하기 위해 정형외과로 이동했다.

하지만 정형외과의 당일 진료예약은 마감이 된 상태라 하는 수 없이 응급실로 이동해 척추 엑스레이와 혈액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가 나오는 동안 나는 지난주에 실시한 내시경 검사결과를 들으러 서울대병원에 다녀와야 했다. 응급실을 떠나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언제쯤 돌아오는지 재차 확인했다. 아버님이 계시지만 귀가 어두우셔서 소통이 쉽지 않은 탓이었다. 병원입장에서는 환자와 보호자가 모두 고령자라 좀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서울대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님은 척추골절로 10주 진단을 받았고 바로 입원해야 하는데 간병인이 없는 일반 병동이라 보호자가 있어야 입원 수속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님 연락처를 알려주었는데 그사이 아버님께서 약주를 드셔서 보호자등록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정말 막막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며느리일 뿐인데 입원 수속을 밟는 와중에 술을 드시다니.

나중에 **병원으로 돌아와 아버님 얘기를 들어보니, 너무 속상해서 한잔 마시고 있는데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다고 했다. 팔순이 넘으신 노인이 일 년 넘게 환자를 돌보고 있으니 힘드시기도 하실 테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하루종일 병원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느라 진이 다 빠졌는데 시아버지께 '왜 술을 드셨냐'라고 말씀드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간호사에게 다시 전화해 오늘 입원하지 않고 그냥 귀가하겠다고 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머님의 주보호자를 할 입장은 아니었다. 아까 어머님이 계시는 응급실엔 코로나 환자가 두 명이나 있었는데 내가 병원에 있다가는 며칠 남지 않은 두 딸들의 출국에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오늘 입원하지 않겠다는 말에 의료진들은 그냥 아버님을 보호자로 등록하고 입원을 진행시켰다. 이대로 귀가시키기에는 환자 상태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병원에 다시 도착해 입원수속을 하고 응급실에 있던 어머님과 함께 일반병실로 이동했다. 지난번에 입원했던 통합병동은 간호사들이 환자를 직접 케어해 주었는 데 반해, 일반입원실은 보호자가 24시간 지켜야 하는 시스템이라 주 보호자가 문제 되었던 것이다.

통합 병동에 입원할 것만 생각하고 있다가 간병인도 구하지 못해 결국 86세의 노인이 84세의 노인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다가 혹시 아버님까지 편찮으시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이런 상황이서도 결국은 '내 걱정'밖에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나의 민낯을 드러내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아버님이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오시는 것을 확인하고 8시쯤 병실문을 나섰다. 아파서 찡그리는 어머님 얼굴도, 맞은편 침대에 환자복을 입고 누운 노인들의 모습도, 늙고 아픈 모습이라면 보기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태어나면 모두 다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지금까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모든 과정이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스스로 걸어 화장실을 가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운 채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하루를 보내는 때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보낸 숱한 나날들이 결국 죽음에 이르는 여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나와 다시 빗길을 뚫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현관에서부터 식탁까지 온갖 택배 물건과 박스와 캐리어 같은 것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달 말에 출국하는 두 딸들의 짐 속에 들어갈 물건들이었다.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 지금은 어수선하지만 몇 달 후면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각자 있는 곳에서 또 자연스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새삼, 이 세상 무엇보다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우리의 계획이나 기억이나 선의 같은 것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듯 흘러간다. 그래도 우린 계획하고 기억하고 어떻게 살아야 덜 후회할지 고민한다. 시간 앞에 무력해 보여도 우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