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다시 쓴다는 것

by 루씨

어제는(7.28 금) 어머님이 퇴원하는 날이었다. 12시쯤 **병원에 도착하니 점심 식사시간이었다. 식사 후 마친 그릇을 밖으로 내다 놓고 커튼을 친 다음 옷을 갈아입게 해 드렸는데, 일주일 새 어머니의 몸이 많이 불어나 있는 것 같았다. 퇴원 수속 후 진료예약이 되어있는 서울대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내가 운전하고 어머님 아버님은 차 뒷좌석에 앉으셨다. 어머님은 지난 주와는 달리 목소리에 기운이 있으셨고 말씀도 꽤 잘하셨다. 항생제 처방으로 염증수치도 내려가고 식사를 많이 못하셨다 해도 수액이 들어가니 기력을 회복하신 것이다.

운전하며 어머니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에 수가 출국하고 나면 너무 서운할 것 같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수가 온 집안에 복을 가지고 들어오는 아이인데, 다른 나라로 가고 나면 서운한 건 말할 것도 없다고 하셨다. 병원에 가는 동안 도로상황도 좋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여유 있게 도착했다. 지난주처럼 주차장에서 자리를 찾지 못해 고생하지도 않고 바로 진료실로 들어가 접수하고 기다렸다. 남편은 이번에도 반반차를 내고 3시 반쯤 병원에 왔다. 더위에 버스를 타고 온 남편은 지쳐 보였지만 아들을 본 어머님은 갑자기 눈에 빛이 도는 듯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온 아버님을 보더니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시원한 병원 따라다니면서 아주 신이 났구먼."

아버님은 입을 다물고 계셨고 남편이 나서서 어머님을 말렸다. 어머님은 아들의 만류를 즐기는 듯 이죽거리며 잔소리도 조금 잦아들었다.


나는 한 발자국 떨어져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남편을 죽 지켜보았다. 남편은 어머님 옆에 붙어서 치료에 관한 이런저런 설명도 하고,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화제에 올리며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애를 썼고, 아버님은 잠자코 어머님의 지청구를 듣고 계셨다. 대기실에서 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집착에 체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간호하는 남편은 본체만체하고 아들만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게 과연 모성애이고 사랑일까?


내가 본 바로 남편과 어머니는 우리의 결혼 이후 줄곧 이런 관계를 유지해 왔다. 어머님의 지극한 아들 사랑은 며느리인 나와 아이들에게까지 봇물처럼 흘러들어오긴 했었다. 친정엄마와 서먹한 편이었던 나는 어머님이 해주시는 지지와 사랑의 말들이 좋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한결같은 믿음과 용기를 주셨던 건 사실 당신 아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의 혜택이기도 했다. 아마 내가 친정엄마와 밀착되어 있었더라면 어머니를 이렇게 '추종'하지 않았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받지 못한 정서적 지원을 어머니에게서 충족시켰기 때문에 이들의 각별한 관계를 이나마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길은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다.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도로는 퇴근 차량들로 사방이 꽉 막혀 언제 도착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도로상황도 답답한데 어머님이 아버님을 향해해 대는 잔소리는 더 짜증을 돋웠다.

'저녁시간인데 애미아비 밥 사 먹일 생각은 안 하고 멍하니 앉아있냐'라고 하거나 '다음엔 병원에 절대 안 오고 집에만 있을 거다'라는 말을 번갈아가며 혼잣말처럼 하시는데 정말 당장 차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게다가 **병원에서 출발할 때부터 주유등에 불이 들어왔는데도 늦을까 봐 바로 오는 바람에 기름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차는 막히지 기름은 간당간당하지 어머님의 잔소리는 차 안에 왕왕 울리지, 운전하는 남편의 얼굴은 나보다 더 복잡해 보였다. 오후 5시에 병원에서 나와 한 시간 가량 도로 위에 있다 보니 배도 고파졌다. 모든 상황이 차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남편은 일단 어디 가서 저녁을 먼저 먹자고 제안했다. 지친 눈으로 바깥을 보는데 4차선 길가에 프랜차이즈 국밥집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우리 넷은 국밥과 모둠순대를 시키고 아무 말없이 앉아있었다. 우린 에어컨 바람에 몸을 식히며 국밥을 먹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밥을 말아놓은 채 긴 의자에 한참 드러누워계셨다. 다행히 본격적인 저녁 장사가 시작되기 전이라 우리 일행 외에는 손님이 없었다. 의자에 누운 어머니를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아버님만 옆을 보고 얼른 한술이라도 뜨라고 말씀하셨다.

다음 주 금요일에 서울대병원에 위내시경검사를 예약하고 왔고, 그다음 주는 **병원 진료가 잡혀있다. 이번 주말 지내고 나서 상태를 살펴 재입원하기로 하고 남편과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9시가 다 돼 가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창문을 활짝 열고 침대에 누웠더니 밤인데도 매미가 줄기차게 울어댔다.

하루종일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 놓으려고 핸드폰을 열었더니 머리가 멍해졌다.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고, 그때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도 잘 정리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육중한 기차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열기를 내뿜으며 지나가버리고 나 혼자 제자리에 남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나간 하루를 기록해 놓으려니 고스란히 다시 한번 더 똑같은 하루를 살아내야 할 것 같았고, 그때부터 적는 것 자체가 진절머리 났다.

그래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방안의 모든 전원버튼을 다 끄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매미소리만 들으며 누워있었다.


이전 03화병원 입원 수속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