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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Feb 29. 2024

Interview - "정답은 지나간 시간 속에 있다"

<바다를 앍어주는 화가,김재신> 인터뷰

프롤로그

몇일 전,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남해 통영에 다녀왔습니다. 평소 애정하는 출판사인 '남해의 봄날'에서 올해 첫 책을 낸 기념으로 통영에서 북토크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화가를 낳은 예술의 도시답게,

통영의 작은 갤러리에서 열린 북토크는 각지에서 몰려온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특히 중앙화단과 멀리 떨어진 통영에 자리를 잡고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이룬 김재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북토크를 찾은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남해의 봄날' 출판사에서 펴낸 <바다를 읽어주는 화가, 김재신> 의 출간에 맞추어 서울 삼청동 학고재 아트센터에서도 일주일간(2.27~3.3)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재신 작가는 1961년 생이시고, 통영의 아름다운 바다를 '조탁'(彫琢,보석과 같이 단단한 것을 새기는 일)이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써서 보여주고 있어 현재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아트페어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있습니다.

서울 전시 첫날 학고재 갤러리에서 진행한 작가 인터뷰를 올립니다^^

학고재 갤러리 (삼청동, 2024.2.27~3.3)

루씨

책 출간 축하드립니다.  <바다를 읽어주는 화가, 김재신> 은 수십 년에 걸친 선생님의 작품과 직접 쓰신 에세이들로 묶였던데요,

책장을 넘기다 보니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온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올해로 작업을 하신 지가 몇 년째인가요?


김재신 

조탁작업으로 바다를 그린 건 20년쯤 됐습니다.


루씨

조탁이라고 하면 낯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지금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

붓이 아니라 조각칼을 이용해 여러 겹의 색층을 조각해 바다와 파도를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30~40층의 물감 층을 쌓아 만든 후 조각칼로 색을 덜어내는 조탁 직업 과정

김재신

실패한 그림 속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루씨

실패한 그림 속에서요?


김재신

오래전에 생계 때문에 그림을 접었다가 다시 그리겠다 마음먹고 전시하기로 약속해 놨는데, 작품이 마음대로 안 나왔어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캔버스 하나에 계속 덮어서 그렸거든요.

그러다가 옆에 학생들이 쓰던 조각칼이 있길래 캔버스를 긁어봤지요. 그런데 그 자리에 싸악, 전복 껍데기 같은 색이 나오는 거라.

아, 그게 너무 좋았던 거예요. 어릴 때 저희 아버지가 통영에서 나전칠기 공장을 하셨는데, 그때 전복껍데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거든요. 그때 봤던 전복 색을 거기서 만난 거예요.


루씨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세렌디피티(serendifity)'의 순간이네요.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에 그런 순간을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간절하다 하더라도 전업작가로 활동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해결한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김재신

저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원래 그림 그리는 건 좋아했지만 미대를 가야겠다 이런 결심을 했던 것도 아니었어요.

친구가 우연히 원서를 대신 넣어줘서 대학에 갔는데 가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림 세계하고는 정말 달랐어요.

고등학교 때보다 더 힘들더라고 대학 다니는 게.

아침에 학교 가면 첫 수업은 들어갔어요. 그런 다음부터는 전부 대리 출석을 시켜놓고 그냥 술 마시러 나가고 그런 상태로 지냈어요.

결국 졸업도 안 하고 다시 통영으로 돌아왔지요.


루씨

그림이 천직이셨을 것 같은데 미대가 맞지가 않았다니 의외입니다.


김재신

그림은 좋아했죠. 그림 자체는 좋았는데 학교를 다녀보니까 이거는 내가 생각했던 그림 세계하고 너무 다른 거야.

그림이 좋을 뿐이지 교수하고 학생의 관계라든가, 제도권의 미술세계하고는 체질적으로 안 맞았어요.


루씨

그럼 대학을 그만두고 다시 통영으로 내려와서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책에는 통영에서 오랫동안 입시학원을 운영했다고 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김재신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통영에 왔을 때는 그림만 그리겠다는 생각으로 내려왔어요.

창고 같은 아주 작은 작업실 하나 얻어가지고요.

그렇게 그림만 그리고 있는데 후배들이 화실 주위에 자꾸 찾아오더라고. 애들 그림 가르쳐 달라고 하고 해서 그 자리에서 학원을 열었습니다.


루씨

학원 운영은 괜찮으셨나요?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셨을 것 같은데요.


김재신

학원은 꽤 괜찮았어요. 가르치던 아이들 좋은 학교도 여럿 보냈고.

마음속에 그림이야 늘 하고 싶었지만 그때 아무 겁도 없이 결혼을 하다 보니까 아이도 키워야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생긴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내가 지금 그림을 그려가지고는 안 된다라는 것을. 가정을 책임져야 되니까요.

그래서 결혼을 하고 한 15년 동안 붓을 꺾었어요. 가끔씩 심심하면 손 푸는 정도만 하고 그림에 대한 생각을 꾹꾹 눌렀지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힘들더라고.

그 상황들이 날 다시 붓을 들게 만들더라고요.


루씨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누를 수가 없었던 거군요.


김재신

그렇죠. 다른 사람들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사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나 힘들어서 다시 그림을 잡았어요.

너무나 힘들었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구나.

내 안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내면의 어떤 갈등들이.

갈수록 이런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지고. 그래서 이렇게 해가지고 안 되겠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다시 시작한 거죠.


루씨

결국 그림을 해야만 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오신 거군요.

조탁 기법을 만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고요.


김재신

맞아요. 제가 그때 가르치던 학생들한테는 '너만의 것을 찾아라,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지 마라' 이렇게 가르쳤는데, 제가 전시하겠다고 그려놓은 그림을 보니까 죄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그림인 거라. 그래서 색을 덮고 다시 덮고 하다가 우연히 칼로 긁은 자리에서 어릴 때 봤던 자개 빛을 발견하게 된 거죠.

그때부터 겹겹이 살을 칠하고 말린 다음에 조각칼로 덜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그때부터 앞도 뒤도 안 돌아보고 작업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조상이 이끌었든지 누가 저를 끌고 갔던 거 같아요.


루씨

2월 초에 통영에서 열린 북토크에 참여하고 다음 날 아침에 통영의 바다를 따라 걷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햇빛에 반사되는 물결과 바다 풍경이 전날 보았던 선생님의 그림과 너무 똑같아서요. 동피랑에 올라가서 통영항을 내려다봤을 때 통영의 바다는 바다라기 보다 넓은 호수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통영에 살면서 바다를 그린 훌륭한 작가들이 정말 많은데요. 작고하신 전혁림 화백의 그림은 운하교 다리에도 그려져 있고, 또 이중섭 작가도 통영에 머물면서 여러 작품을 남기셨지요.

그렇지만 겹겹의 색을 조각해서 보여주는 김재신의 바다가 통영의 바다와 가장 닮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 63×45, 2022

선생님께서는 통영에서 나고 자라셨고 또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서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통영과 통영바다는 선생님한테는 어떤 의미인가요?


김재신

내 그림, 내 작업의 원천이죠. 통영이 없었으면 내가 바다를 그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이런 감수성을 갖고 태어났을까?

바다라는 것은 내가 멍 때릴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루씨

멍 때릴 수 있는 곳이란 무슨 의미인가요?


김재신

그러니까 나를 비울 수도 있고 나를 건드릴 수도 있고. 여러 상반된 어떤 것들을 막 일으키죠.


루씨

선생님은 주로 바다를 그려오셨는데 책에 산을 그린 작품이 딱 한 점 나옵니다. '섬'이라는 작품인데요,

그 작품을 설명하는 글에 '산은 바다만큼 알지 못하니 품어지지 않았다' 이런 구절이 나와요.

'산이 품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김재신

언젠가 서울 전시오프닝에 가는 길에 운전석에 앉아서 눈 내린 덕유산을 봤어요. 그 풍경이 너무 좋아가지고 산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해놓고 보니까 나는 산이라고 표현했는데 잘 안 됐어요. 바다같이 안되더라고. 욕심을 너무 부렸나 싶기도 하고.

섬, 83×61, 2018

산은 바다만큼 재밌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군요. 언젠가 선생님이 다시 그리실 산이 궁금해집니다.

이번엔 '동피랑 시리즈'를 여쭙고 싶습니다.

동피랑은 요즘 벽화로 유명해진 통영의 섬입니다. 동피랑 시리즈엔 바다에 떠있는 낭떠러지 같은 섬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나오는데요,

요즘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섬이라고 할 만큼 고립되어 있는 시대라서 그런지 이 작품들을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김재신

동피랑 그림을 보면 사람들이 어깨 동무하듯이 집들이 붙어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좀 힘들더라도 서로 어깨동무하고 영차영차하면서 살아가는 모습. 그런 걸 보고 싶어요.

동피랑 이야기

루씨

섬 위에 따개비처럼 붙어있는 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살아가는 그림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이웃 간의 든든한 정을 보게 되네요.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과거 제자들에게도 '남과 다른 길'을 찾으라고 했고, 스스로도 '자기만의 길을 찾겠다' 생각으로 오랜 세월 전업작가의 삶을 헤쳐 나오셨지요.

그런데 남과 다른 길을 찾는다는 건 원한다고 다 이룰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길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인지 판단한다는 게 쉽지 않고, 타고난 근성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요. 또 경제적 문제에 부딪히면서 힘들게 찾은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남과 다른 자기길'을 찾을 수 있는 걸까요?


김재신

쉽게 말하면 죽자 사자 해야죠. 죽자 사자(죽기 살기로). 그런데 그 답은 자기가 지나온 시간 속에 다 있을 거예요.


루씨

지나온 시간 속에요?


김재신

돌이켜 보면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는 실수 후회, 이런 게 굉장히 많잖아요.

아픔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그런데 그걸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 답이 있을 겁니다.

시간에는 현재의 시간도 있고 과거의 시간도 있고 미래의 시간도 있잖아요.

그런데 미래의 시간은 필요 없어요. 모르잖아. 모르는 걸 뭐 하러 생각합니까.

그런데 내가 지나온 시간은 어떤 식으로든 내 삶에 재료가 된다 이런 생각을 품어야 되는 거죠.

지나간 일들을 꺼내서 자기화시켜야 돼요. 자기화.


루씨

지나간 시간을 내 것으로 들어 만들어야 한다....


김재신

내 것으로 만들어야죠. 그게 또 재능이거든요.


루씨

흔히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는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오히려 지나간 실수, 후회되는 일들 안에 내가 만나야 할 길이 있다고 말씀하시는군요.

지나간 과거를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남들과 다른 나의 길을 찾아갈 동력이 없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번 서울 전시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통영의 멋진 바다를 만나고 모두들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용기와 위로를 얻었으면 합니다.

선생님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바다를 앍어주는 화가, 김재신>                                          학고재 아트센터 2.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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