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 Apr 15. 2024

기억에는 공간이 필요하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하며

삶에 대한 태도를 공간만큼 잘 나타내주는 것이 또 있을까.

공원과 도서관이 많은 도시는 시민들의 휴식과 문화적 욕구에 귀 기울인다는 뜻이고 늘어나는 금연구역은 시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이다. 한 사회 안에 어떤 공간은 생겨나기도 하고 어떤 공간은 사라지기도 한다.

이년 전 이태원 참사 후 가장 먼저 사라진 건 사고 현장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던 추모공간이었다.

내일이면 벌써 세월호 10주기이다.

가끔, 그 일이 이렇게 세월에 묻혀 잊혀가도 될까 생각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이 땅에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자 한 시민으로서 안전한 삶에 대한 권리를 이렇게 맥없이 빼앗길 수는 없다 생각하면서도,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면서 강산이 한번 바뀌어버렸다. 만약 희생자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가까이에 있었더라면 이 만연한 무력감을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지난 주말, 신문에서 한 인터뷰기사를 읽고 수원가톨릭 대학교를 찾아갔다. 6년 전 안산합동분향소가 철거되면서 허물어질 뻔한 작은 성당이 이곳으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를 읽고 나서였다. 벚꽃이 지고 새순이 곧기 시작한 나무들이 울창한 교정을 조금 오르자 마치 숲 속의 오두막집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임마누엘 성당(수원 가톨릭 대학교)

세월호 참사 당시 예비신학생이었던 고(故) 박성호(임마누엘)군의 세례명을 따 '임마누엘 성당'으로 불리고 있는 이 건물은 참사 후 '세월호 가족지원 네트워크'와 시민들의 재능기부로 지어지어 져 당시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던 공간이다.

교정으로 자리를 옮긴 한 평 남짓한 성당 안에는 소박한 제대와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액자들과 조각, 그리고 그림이 놓여있었다.

희생자 304위
세월호 피에타 상
무명 순교자상
2018년 팽목항에서 옮겨진 십자가

세상이 아무리 엉망진창으로 돌아간다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길을 찾아나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또 생겨나고 있다. 잊혀간다는 생각은 이래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마음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조롱과 망각을 부추기는 말을 넘어설 수 있는 자신 있는 손내밈과 힘찬 말이 더 필요하다.


https://naver.me/GcnO78k3

매거진의 이전글 수도원을 떠나며 - 이어지는 이야기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