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래요. 빵이 제 인생의 목표는 절대 아니고 굳이 인생의 목표라고 얘기하자면 놀고먹는 건데, 이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빵이라는 과정을 거쳐가고 있고 이게 꽤 재미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Q29. 같이 놀고먹을 친구들은 주변에 많으신가요?
제가 맛있게 먹고 열심히 놀고 있으면 오겠죠. 사람을 쫓아다니지는 않아요.
제가 뭐 잘나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니고요. 사람이 사람이 만날 때는 제일 중요한 요소는 솔직함, 솔직하게 지내다 보면 서로 동질감을 느낄 때가 있겠죠.
저는 이것만큼은 그냥 심플하고 단호하게 얘기해요.
"빵은 절대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Q30.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일을 하되 빵 만드는 일 자체를 '나'로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일과 나 사이에 '거리두기'라고 봐야 할까요?
네. 저는 건강한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도 사람도 적당한 거리를 갖고 있어야 충격이 오더라도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야 제가 상대한테 터치를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걸 구분할 수도 있고요. 질문하고 싶지만 질문을 참아야 될 때가 있죠. 빵도 그래요. 이걸 너무 잘하고 싶어서 쑥 들어가 버리면 거기 함몰 돼버려요. 그 안에서의 자세한 모습을 볼 수는 있겠지만 범위는 더 좁아져버리죠.
Q31. 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 올인하다가 번아웃이 됐을 때는 참 헤어나기 힘들지요. 빵과의 거리를 둔다는 얘기를 듣다 보니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에 나오는 '다루마리'라는 빵집에서는 직원이 너무 슬플 때는 빵을 못 굽게 한다고 해요. 왜냐면 그 슬픔의 감정 때문에 빵이 짜지거나 뭔가 신맛이 나기 때문에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책을 썼던 친구가 우리 가게에도 한번 왔었어요. 참 대단한 친구지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빵보다 사람이 먼저이지 빵을 위해서 감정까지 추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슬픈 사람 보고 슬퍼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오늘은 빵 만들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그런데 이런 성향은 어쩌면 일본 사람들의 특징 같기도 해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일본 제빵사 한 분이 계신데 그분은 새벽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16 시간을 집에서 빵을 만드시거든요. 제가 그분께 "저는 술도 먹고 싶고 놀러도 가고 싶고 그런 좋아하는 것들 중에 하나로 빵이 있는 거지 당신처럼 목숨 걸고 빵 만들기는 싫습니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저에게 "충분히 이해 간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말 좋은 기술을 갖고 계셨던 분인데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그런 분들을 뵈면 대단하다고 감탄하긴 해도 제가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요.
Q32. 똑같이 빵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업을 대하는 스타일은 많이 다르군요.
지금 <오월의 종>에서 만드는 빵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빵은 어떤 건가요?
좋아하는 빵은 없어요.
Q33. 당황스럽습니다.(웃음)
호밀 100% 사워종으로 만드는 빵이 있는데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안 팔리지만 하루 일과 중에 첫 번째로 나오는 빵이에요.
Q34. 잘 팔리지도 않는데 왜 만드세요?
일종의 루틴이에요. 이걸 만들어야 오늘 빵이 시작된다 하는 느낌으로 만들고 있고, 또 '그래 끝까지 가보자'하는 마음도 있어요.
Q35. 잘 팔릴 때까지요? (일동 웃음)
네. 그런 오기도 있고요. 사실 발효종이라는 게 자꾸 소모되고 다시 밀가루와 물을 채워주어야 건강하게 유지되거든요. 안 팔린다고 해서 안 만들면 정체가 되잖아요. 사워종 하고 르방종을 쓰는데 이게 다른 빵에도 다 들어가거든요. 계속 순환을 해주려는 기능적인 측면도 있어요.
Q36.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몇 년 안에 많은 직업들이 AI 로봇으로 대체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바리스타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도 생겼던데요, 혹시 '베이커'라는 직업도 로봇이 대체할 수 있을까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일본 제빵사 분과 그 문제를 놓고 함께 토론한 적이 있어요.
'요즘 공장에서도 다 기계가 빵 만드는데 이러다가 제빵사가 사라지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했더니, 자동화는 반드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데 빵 만드는 공정이 생각보다 데이터화하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설사 자동화가 되어 공장에서 아무리 잘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사 먹는 사람 마음이란 게 이상해서 결국 사람 손 거친 걸 찾게 되거든요. 그래서 100년 후에도 빵집은 존재할 거고 빵 만드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는 창가에 있던 둥근 빵덩어리를 건네며 향을 맡아보라고 했다. 갈색의 투박한 빵에서는 오래된 종이 냄새가 구수하게 올라왔다. 그 빵은 '아인콘(Einkorn)'이라는 고대 밀로 만든 깡파뉴였다. 빵을 구운 후 삼일 째 창가에 두고서 풍미의 변화를 테스팅하는 중이라고 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 거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원하는 최고의 칭찬은 '그 빵 먹을 만했어'정도라며 굳이 구하기 힘든 비싼 재료를 사용해서 빵을 만들 생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의 말이, 주목과 관심의 덫에 빠지지 않고 오래도록 자신의 업을 수행하는 즐거움을 누리려는 자의 잘 설계된 계획 같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나고 보니 비밀의 열쇠는 주머니 안에 있었고 행운은 자주 고난의 얼굴을 하고 왔었다. 그러니 뜻대로 되지 않는 오늘에 미리 감사할 줄 안다면 우리가 찾고 있는 길은 한 뼘쯤 미리 올지도 모른다. 익숙해지려면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