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쯤 어머님의 장례를 치르고 글을 쓰지 않았다. 한 사람이 살던 자취를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삼우제를 치르고 아버님은 옷장을 열어 어머님이 입던 옷가지들을 꺼내 추려주셨다.
두 딸들은 할머니를 기념할 만한 옷과 물건들을 추렸고 나머지는 모두 정리되었다.
어느덧 9월에 접어들었고 식구들은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회사에 다니고, 딸들은 각자 공부를 이어나가고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마 이 지구상에서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떠올리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지 않을까. 더불어 태어날 누군가를 상상하는 것도 아마 사람만이 가진 능력일 것이다.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떠올려보는 건 상상력 덕분이다. 상상력이 사람들의 삶에 반드시 도움을 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를 떠올린다는 게 생각처럼 단순한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을 떠나간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를 골똘히 생각할 때는 의식하든 못하든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지나간 사건의 정황을 복기하는 것을 수도 있고, 함께 했던 시간 동안 누린 행복감이 필요해서일 수도 있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지금' 자신이 있을 곳을 정하는 일이다.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그곳'에 가있고 '그 사람'과 함께 한다.
말은 생각의 자식. 거친 생각에서 나오지 않은 거친 말은 없고 들어서 유익한 말은 유익한 생각에서 나온다. 나는 요즘 때때로 거친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 잠시 입을 닫아두기도 한다.
후회되는 일, 원망하는 마음, 귀찮은 일, 크고 작은 걱정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닫힌 입에 막혀 사그라드는 걸 관찰하고 나니, 입을 다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그전에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떠오르는 생각을 어찌할 수가 없을 때는 차선책으로 말을 조심한다.
글은 말보다 더 조심스럽다. 한때의 생각을 남기게 되고 읽는 누군가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좋은 글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멋진 생각을 한 누군가와 연결되어 나도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한때 백세가 흔해진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 세대의 행운에 약간 우쭐해졌었다. 하지만 몸은 마음보다 훨씬 정직해서 겨우 오십 중반인데도 늙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상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백세까지 살게 되더라도 육칠십에 이미 늙고 병들고 괴팍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도 나와 남에게 해가 되는 말을 하지 않고 살기, 살아온 날들만 떠올리거나 다가올 고립감에 미리 주눅 들지 않기. 괜한 걱정 하느라 오늘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고, 작은 약속이라도 성실하게 지키는 하루를 살아가기. 씨 뿌리는 농부처럼 노후의 밭을 가꿔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