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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y 31. 2021

입맛이 바뀐다는 말

연애의 발견

-맛있는 것 꽤 많이 먹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너 만나고부터 내 입맛이 달라졌어. 고급화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다각화가 더 정확하려나?


-오, 미각이 발전했어. 초반 우리 같이 밥 먹을 때, 네가 얼마나 음식을 대할 때 무감한 지 보고 난 놀랐단 말이야.


전쟁통에도 사랑은 피어난다더니,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이면서도 여러 번 들었으니 그저 농담은 아니다.

그렇게, 조금 이상한 타이밍이었지만 우리 만남은 코로나로 들썩일 때 시작되었다.

예상보다 길어진 반년 이상의 프랑스 통금과 봉쇄의 연속으로 우리 둘만의 첫 외식은 불과 며칠 전이다. 그러니까 그전에 함께 먹은 밥상의 90프로는 내가 만든 음식이었다.(간혹 시켜먹거나 포장해온 음식이 1할 정도)


아무리 봉쇄가 진행되고 있더라도 프랑스인들의 장터 사랑은 막지 못한다. 주말 아침마다 각종 과일, 생선, 고기, 치즈를 파는 시장은 언제나처럼 활기차게 오픈하고 마감했다.  도시에서의 장터는 시골 못지않게 소소하지만 예전 일상을 상기시키고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인 터, 오히려 예전보다 사람이 많다. 나의 레스토랑 인턴이 코로나와 발맞춰 중단되면서, 이전 프랑스인들과의 일상은 다르지만 나 또한 이 장터라도 나가 신선한 재료를 구경하고 맛보는 것이 소소함을 넘은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해서, 매일같이 사부작사부작(그의 묘사에 의하면 고양이처럼 사부작 거리고 있단다), 뚝딱뚝딱  우리 식탁에 매일 다른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그의 입맛을 바꿔볼 테야, 야심 찬 계획 같은 것은 아니다. 다분히, 어쩌다 생긴 나의 여유시간을 맛있게 시즈닝 하는 과정이었고 그는 이 과정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피실험자가 된 것일 뿐.


 그와 처음 마트 쇼핑을 갔을 때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나와 완전히 반대 스타일을 가진 타인을 처음 마주한 듯하다. 나의 경우 신상품, 인기상품 구경과 세일 상품도 빼놓지 않아야 하고, 내가 살 것들은 주의깊에 품질과 브랜드, 영양성분을 살핀다. 예정에 없던 상품을 구경하고 있거나 구매하는 것이(현명한 쇼퍼가 아님을 인지하더라도) 비일비재한 편이다. 사려고 했던 재료가 부실하거나 생각지 않은 재료가 신선하거나, 생각보다 싸거나 하다는 이유로 나름대로 합리화를 해서 말이다.

 반면, 그는 타이머 시작, 미션을 수행하듯 생각한 쇼핑 목록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다. 그 많은 치즈 상품-아무리 작은 마트여도 프랑스에는 적어도 수십 가지 치즈가 있다- 중에 그는 항상 먹는 브랜드의 염소치즈만 두 개를 집어 들었고, 그 많은 쌀 종류 중 그의 집에서 본 그 브랜드의 쌀 두 봉지만 카트에 넣었다. (다른 것과 비교 따위는 없다) 그러고 나서 빠르게 와인 코너로 가더니 적당한 가격의 레드와인을 두 병 골라 계산대로 향했다. 

 

 내가 나름대로 야심 차게 준비한 음식을 내놓으면 (이것은 여전히 그렇지만) 전투식량이라도 받은 듯 그는 '열심히' 먹는다. 나도 '열심히' 먹지만 나의 열심과 그의 열심의 모습은 참 다르다. 먹는 속도만이 아니라, 때로 그는 본인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불확실해 보인다. 

 -비린내가 생각보다 없지? 생선으로 죽을 쒀도.

 그릇을 다 비우고 나서 그가 말했다.

 -닭고기 아니었어?

-......


 

 그리고 지난주, 손님이 오신다고 하셔서 함께 장을 보기로 했다.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 그리고 염소치즈는 사지 않았고 둘 다 좋아하는 까망베르와 함께 여러 번 먹어본 뒤 매력을 알게 된 톰 Tomme 치즈, 내가 좋아하는 모르비에 치즈를 꺼내왔다. 

 한 번도 자기 손으로 사본 적 없는 애플망고를 바구니에 넣었고, 와인은 내가 한 번 말했던 와인 전문가가 추천한 레드와인이었다. 망고를 잘라본 적 없는 그가 처음으로 손질한(손질했다고밖에 표현하지 못할) 망고 접시를 손님에게 내놓으려니 조금 민망했다. 그는 망고 씨가 그렇게 큰 줄 처음 알았단다.

 

 망고와 차 한 잔만 드신 손님이 돌아가신 다음, 우리끼리 사온 와인과 치즈로 금요일 저녁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마트에서 산 치즈는 확실히 치즈 숍에서 산 그것보다 조금은 깊이가 부족하다. 

 우리가 만나기 전 항상 먹던 까망베르 치즈가, 별로라고 말한다. 

-맛있다고 먹었던 브랜드였는데, 이상하다.

-잘 길들여지고 있네.

-응?

-(웃음)


 입맛이 바뀌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라 여겨왔는데 또 생각보다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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