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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Apr 09. 2021

언제부터 행복하면 좋을까

기대가 방울방울

- 네가 네 시에 온다고 하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할 거야.


어린 왕자의 유명한 한 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모두 안다.

'부푼 기대감'이라는 기대감을 자주 형용하는 말을 떠올려보면,

 마치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다가 이내 심장이 풍선처럼 공기 빵빵하게 들어간 느낌을 준다.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묘한 들뜸,

 바로 기대하는 마음의 정점 이리라.


하지만 때때로 빵빵하게 가슴 부풀어 오르던 중에

기대하던 시간을 맞딱들이면

뻐엉,

터져버릴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까 한 시간 전부터만 행복해지기 시작하면

과다 팽창까지 가지 않을 텐데,

기다림이 너무 오래되면 문제다.

부풀어 터지거나, 말라버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될 테니까.

기다림이 짧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커다란 기대감이어도 터지기 쉬운 건 마찬가지, 허나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니 더 문제다.


글쎄, 매 년 맞이하는 생일을 비롯한 몇몇 기념일이나 성탄절이 그러한 편이다.

기대하던 맛집에 가보는 일, 저녁에 먹으려고 넣어둔 케이크 한 조각을 기다리는 일은 일상에 활기를 주는 작은 기대감이다.


거의 매일

소셜미디어에서 눈여겨보고 있던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가 있다.

알게 된 지 몇 개월 이건만,

시간대가 맞지 않아 먹으러 가지 못한 채 해가 바뀌었다.

드디어 주문에 성공한 지난 월요일.

'부푼 기대'를 안고 인터넷으로 주문 및 결제를 한 다음 정한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가게가 앞에서 보니 생각보다 자그마하고 굳이 발걸음을 멈춰 들를 만한 외관은 아니다.

여느 프랑스인처럼, 직원은 고운 미소와 함께 내 이름을 서툴게 하지만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나를 불렀다.


사람이 적은 적당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예쁘게 포장한 음식을 꺼내 들었다.

의무감처럼 나도 카메라를 들어 이리저리, 내가 봐왔던 사진들처럼 찍어댔다.

맛있었다.

솔직히,

잘 모르고 들렀다가 포장 주문해서 먹었으면

'와, 여기 뭔데, 맛있네?'라고 할 만큼 정성과 센스가 있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몇 개월간 차곡차곡 쌓여온 나의 기대감이 문제였다.

핀으로 퐁! 찌른 듯 바람이 서서히 빠지는 것 같다.

적어도, 펑! 실망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맛 자체가 아니라 혼자 상상해 온 무언가가 사라져 버린 기분 때문일 수도 있다.



식당의 간판메뉴 채식 반미도그, 튀긴 두부와 수세 브리오슈 빵에 허브 마요네즈.

세상의 많은 경험은 기대감을 어느 정도만 충족시켜도 본전이다 싶은 것으로 가득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기대 없이 일상을 꾸려나가기란 또 얼마나 지루할까.

아니 기대감이란 사실 우리가 태초부터 가지고 왔고 삶을 이끌어 나갈 원동력 중 하나일 테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기대감을 갖고 무언가를 마주한다는 것은

실망의 여지가 있다 해도 매 번,

가슴 뛰는 일.

다시 한번 흔한 말로 끝을 맺어본다.

가슴이 뛰지 않으면 죽은 사람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오늘 가지고 있는 가슴속 작은 공기방울이 나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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