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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05. 2021

빵 타이밍처럼 맞출 수있는 게인생이라면

바게트가 구워 나오는 시간

프랑스인 스스로도 인정한다. 

프랑스는 유럽 중에서도 무언가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고, 받아들인 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데는 또 그만큼의 시간이 든다고 말이다. 

고로, 전통과 문화를 고수하는 것에 고수인 사람들이다.

해서 배달 서비스와 이를 가능케하는 일례의 온라인, 모바일 구축망이 형성되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오래 걸렸다. 많이들 예상했던 바다. 그래도 불과 일 년 전에 비해 배달 업체 숫자는 굉장히 늘었고 서비스 시간은 많이 단축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비대면을 위한 시스템에 발맞추어야 하는 것은 고고한 프랑스라고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에게 빵집에 가서 바게트 하나 사는 것은 하루의 시작, 아침을 여는 신성한 일 중 하나인 것은 여전하다. 따끈하게 구워 나온 바게트를 배달시켜 먹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 실로 바게트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줄 서서 기다렸다가 팔 한 아름 가득 신선한 바게트를 안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오죽하면 작년 첫 봉쇄 시, 프랑스 남부의 한 도시 시장은 시민들이 바게트 사러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주 디테일한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수많은 프랑스의 식당이 임시휴업 중이거나 마진이 크게 남지 않는 배달로 연명하는 와중에, 물론 빵집도 손해는 분명하지만 2020년 두 번의 봉쇄와 계속되는 통금에도 바게트는 매일 구워져 나왔다.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메뉴가 만만한 바게트 샌드위치. 아침은 아침대로 점심은 또 점심대로, 퇴근길 저녁에 먹기 위한 바게트로 저녁은 또 저녁대로 바쁜 곳이 프랑스 빵집들이다.

 3차 봉쇄를 한다 만다 시끄러웠으나 아직은 저녁 6시 통금을 지키고 있다. 아침 일곱 시, 정오 그리고 오후 4시 반 즈음 사람들은 봉쇄와 통금을 지나온 것 같지 않게 아무 일 없다는 듯 빵집 앞에 또 줄을 선다. 

집 먼지가 코에 쌓일 때쯤, 파리에서 가까운 근교에 드라이빙을 나갔다. 당연히 식당에 앉아 먹을 수 없으니 검색하다가 들어간 루아르 강이 유유히 흐르는 도시 '뚜르'의 한 베이커리. 임대료가 비싼 파리보다는 형편이 나아서일까, 널찍한 내부의 빵집에는 고개 한 번만 돌려 훑어도 빵 종류가 족히 오십여 가지도 더 된다. 직원은 얼핏 여섯일곱, 밀려드는 손님들에 숨 쉴 틈도 없어 보인다. 천천히 보면서 고를 시간은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몇 가지를 가리키며 'oui, oui(네, 네)' 순식간에 계산을 하고 나왔다.


적당히 먹을만한 곳도 없는데 오븐에 한 번 데워 나온 빵이 식어가길래 마음이 급하다. 

"여기 세웁시다!"

자고로 음식은 상태가 중요하다. 갓 튀긴 튀김이 그러하고 레스팅 시간을 충분히 준 스테이크가 그러하다. 적당히 식은 호박죽이 그렇고 얼음이 십 프로만 녹은 아이스 라테가 그렇지 않은가. 연어와 치즈를 올려 구운 사워도우, 내 빵이 그때는 그랬다. 치즈가 굳어지면 무슨 소용인가!

자동차 본넷 위에 상을 차린다. 

 조금만 뜸 들였으면 치즈도 연어도 딱딱해져 있었을 것이다. 완벽한 타이밍은 놓쳤지만 본넷을 식탁 삼아 먹는 것을 감안한다면 괜찮은 정도다.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지만 배경음악 삼기로 한다. 살짝 시큼한 효모 향이 훅 올라오는 사워도우가 짭조름한 연어와 치즈 사이에서 풍미를 지켜냈다. 

 겉모습에 반해 주문한 '파리 브레스트' (슈 반죽 안에 견과류 크림을 넣어 만든 프랑스 디저트)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진한 헤이즐넛 크림과 오도독 씹히는 초콜릿에 부드러우면서 눅눅하지 않은 슈. 이 정도 퀄리티의 디저트를 종이박스 안에 구겨 넣어 일회용 칼로 대충 잘라먹다니 안타깝다. 동시에, 프랑 스니까 이 퀄리티와 가격으로 빵 잔치를 할 수 있지 싶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제 빵과 디저트는 먹을 수 있는데도, 시샘이 날 만큼 역시 맛 좋은 프랑스 빵이다. 


 그러니까 빵 타이밍이 중요한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일 미터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나도 빵집 앞에 줄 서게 되는 아침, 철학자가 되어본다. 타이밍을 예견할 수 있다면 안전거리와 마스크는 이미 없었을까. 완벽한 타이밍을 알면 따끈한 결과물을 안아볼 수 있겠지. 그렇지 못하니 기다리더라도 보장되어 있는 어떤 것, 자그마한 빵 하나라도 손에 넣고자 할 뿐.

 너무 뜨거워 커다란 집게로 바게트를 건네주는 빵집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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