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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Feb 05. 2021

살아있다

morbier cheese 모르비에 치즈


'프랑스에 있으면 와인 싸게 실컷 먹겠다, 부러워.'


 똑같은 프랑스 와인 가격을 한국에서 판매하는 것과 비교하면 사실이다. 한국은 주류 과세가 상당하니 당연히 그렇다. 한국에 없는 와인들도 수두룩, 매 번 같은 와인 먹는 것이 아까울 만큼 다양한 생산자와 포도종을 가진 나라이기도하다. 술 좋아하는 이들이 부러워할 만도 하다. 

 문제는 내가 술을 잘 못 마신다. 소주, 맥주는 분위기 맞추느라 입만 대는 정도, 와인은 참 좋아하는데 두 잔째 이미 양 볼이 발그레해진다. 반 병 넘어가면 뭐가 무슨 맛인지 구별이 잘 안 되니, 시음하러 가면 손해인 사람. 

 다른 문제는 가격이다. 한국에서보다 월등히 저렴하기는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입장에서 값비싼 와인은 여전히 천장에 매달아놓은 굴비와 같다. (실제로 값이 나가는 와인들은 매장 선반의 가장 위에 있어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봐야 한다) 데일리 와인은 5-10유로 사이로 족하고, 가끔 누구와 함께 먹을 때 15-20유로 사이를 고른다. 가격으로 와인을 판단하지 말라고 누누이 들어왔을 테다. 그렇지만 5유로랑 50유로짜리랑은, 다르긴 다르다고.


자, 그에 비해 치즈는 너그러운 편이다.

나는 주변인들이 인정하는 치즈 사랑꾼.  와인만큼 치즈도 종류가 굉장해서 '프로마제히 Fromagerie (치즈 숍)'에 가면 나는 그야말로 눈이 핑글핑글 돌아가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프랑스 정부에서 부여하는 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 ) 인증을 받은 치즈들은 대부분 믿고 먹고, 각 분야 장인들에게 주어지는 MOF( Meilleur Ouvrier de France) 중에는 치즈 장인도 있다. 또한 프랑스에는 치즈를 숙성하는 사람, affineur라는 직업도 있다는 말씀. (보통 대를 이어받아 배우는 것이지 따로 숙성에 대해 교육하는 기관은 아직 없다.) 

 치즈 숍이 아니어도 마트에도 상당한 카테고리의 치즈가 있고 저렴이들도 많다. 한편, 치즈는 와인보다 가격대와 품질이 비례하는 편. 그렇다 해도 병으로 나오는 와인을 한 잔만  살 수 없지 않은가?  치즈 숍에서는 아주 적은 양이어도 원하는 만큼 깔끔하게 잘라주고 종이에 소중히 포장해주니 맛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너무 많은 치즈를 이야기하고 싶지만, 추천해줬을 때 실패 없는 무난하면서 맛있는 이 치즈, 

모르비에는 아마 평생 친구가 될 것이라 믿으니 글로 남겨본다. 

 모르비에 치즈는 프랑스의 대표 치즈 콩테 comte와 같은 고장에서 나는 치즈이다.  온전한 하나의 치즈를 만들기에는 우유가 부족하여 냄비 속 커드의 윗면에 식용 숯을 뿌려서 보관하였다가(마르지 않게 하기 위함과 벌레 앉는 것도 막기 위함이었다) 이튿날 아침 새로운 커드를 보충해 하나의 치즈로 만들었다. 해서 저녁 치즈와 아침 치즈의 경계가 가운데 거뭇하게 남아있게 된 것. (지금은 식품첨가탄을 사용해 이 치즈의 유래를 보여주는 장식용일 뿐이기는 하지만 누가 봐도 모르비에 임을 알도록 하는 마스코트가 되기도 한다.) 

 소젖으로 만들지만 길게 숙성시키지 않고 먹기 때문에 치즈 특유의 군내가 거의 없고. 가볍게 단맛이 돈다. 생긴 것에 비해(?) 냄새도 맛도 부담이 없어 치즈를 잘 못 먹는 사람도 즐길만하다. 과일은 물론, 가벼운 과실 향 와인과 정말 잘 어울린다. 



얼마 전 모르비에 치즈 중 가장 맛있는 녀석을 만났다. 

치즈 숍에서 줄 서서 산 이 모르비에는 '살아있다'를 느꼈다. 마트에서 파는 상품들도 나쁘지는 않지만 대부분 조금 거슬리는 고무 질감이 있다. 반면 이번에 만난 아이는 탱글 하면서도 손가락 끝에 살짝 묻어날 만큼의 촉촉함이 남아있고, 원유의 고소하고 깊은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가격은 마트의 1.5배가 조금 더 되지만 완전히 가치가 있다. 이렇게 한 조각 5유로가량, 적어도 서너 번은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 저렴이는 아니어도 투자할만하다.

 알코올이 경고를 주듯 머리가 핑글 돌지 않아서 놓고 먹다 보면 끝없이 들어가기 쉬운 게 치즈의 문제라면 문제다. '살아있는' 먹거리라 몽땅 한국에 가져가고 싶어도 맛이 변할 터이니 이 또한 안타까운 문제. (보통 한국에서 유통되는 프랑스 치즈는 숙성이 더 이상 되지 않는 상품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내 치즈를 옮기기 전에 내가 다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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