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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Jan 13. 2021

달라질 것 같지 않은 것, 또한

새큼달큼 유부초밥

유부초밥.

만들어 나온 조미식초와 건조 조미를 밥에 넣어 유부 속에 꾹꾹 밀어 넣으면 그만이다. 마는 사람마다 싸는 날마다 맛이 멋이 달라지는 김밥과 달리, 모양도 맛도 일률적인 유부초밥은 나는 그다지 정이 가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도 내가 만든 것 같지 않은 음식, 맛이 없지 않지만 자주 하게 되지도 않았다. 누가 해 오면 한 두 개 집어먹었던 정도였겠다. 물방울 예쁜 모양의 김밥을 잘 말던 엄마도 유부초밥을 잘 안 하셨던 이유가 그것이었을까.


타지의 먼 땅에서 계절의 바뀜을 보고 느끼다 보면 한두 번쯤 찾게 되는 한인마트에는 항상 유부초밥 세트가 있다. 김밥김을 장바구니에 넣고 나서 조금 고민하다가 유부초밥세트도 집어 들었다. 김밥을 하려니 단무지를 비롯해 적어도 서너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보니 말이다.

동봉된 조미식초는 분량의 절반만, 흠뻑 젖은 유부는 꼭 짜내 최대한의 물기를 뺀다. 다진 소고기에 갖은양념을 해서 살살 볶아 식혀두고, 콘 옥수수도 담겨있던 물을 빼 준비. 소고기와 옥수수, 직접 볶은 통깨도 아낌없이 뿌려 넣고 너무 질지 않게 지은 밥에 잘 섞는다.

다소 무식하게 밥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도 나는 별로다. 잘 버무린 밥 딱 한 숟가락을 유부 속에 넣으며 밥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유부가 찢어지지 않도록 손가락에 힘을 살짝 빼야 한다. 살짝 볼록한 모양을 위해 약간만 밥을 얹듯이 눌러준다.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얕본 게 사실인데 쉬운 듯 어려운 집중이 꽤 필요했다.



장밋빛 색깔이 고운 비트루트 물을 들이기도 했다. 조금만 넣어도 하얀 밥이 봉숭아 물들인 듯이 염색이 되어 눈으로 한 번 더 즐겁다. 약간의 고민을 통해 달라질 것 같지 않은 것도 달라졌다. 별것 아니지만 내심 뿌듯한 유부주머니 하나하나가 소담스럽다.


도시락 메뉴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답답한 요즘 바닷바람 한 번만 쐬고 오고 싶었던 일월의 어느 날, 유부초밥을 싼 도시락을 가방에 넣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몇몇 나처럼 바다를 보러 온 사람들은 근처 몇 안 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나 크레이프를 우적우적 먹고 있다. 나는 자랑스럽게 내 유부초밥을 꺼내 잔디밭에 앉아 어느 때보다도 맛 좋은 점심을 했다. 


무엇이든지 

당신만의 무엇이 가능하리라.

당신이 의미만 부여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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