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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Jan 06. 2021

1월이구나, 너를 보니

걀레뜨 데 후아 Galette des Roi

통나무 모양 케이크의 달콤함이 가시기도 전에, 프랑스 베이커리들은 다시 분주하다.

1월 6일, 주현절(왕들의 축제, 아기 예수가 세례를 받은 날)을 위한 또 다른 디저트가 준비되기 때문이다.

'걀레뜨 데 후아', 

눈으로 봐도 바삭하게 파사삭 부서지는 겹겹의 페스츄리 파이로,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를 기준으로 12일째 되는 밤 1월 5일에 온 가족이 먹는다. 전통적으로 페브 Feve라는 깜찍한 도자기 인형을 파이 속에 숨겨 놓는데, 예수 탄생 축하를 위해 찾아온 동방박사를 상징한 것이다.

파이를 잘라 나눠 이 페브를 찾는 사람이 그 날 'Roi, 왕'이 된다. 

(MT 가서 즐겨하던 왕 게임이 생각나는 건 나뿐만이 아니겠지. 엠티라니! 실제로 오래되기도 했지만 타지에서 떠올려보는 이십 대 초반의 날들은 그야말로 아득하다. 코시국이라 순수한 연합의 최고봉 엠티를 만끽도 못하는 신입생들도 안타깝다. 엠티 또한 새 학기에 들어서면서 설레는 무엇인가가 아니던가.) 


페브는 불어로 콩의 일종인데, 실제로 예전에는 진짜 콩을 집어넣었단다.

이제는 캐릭터도 모양도 다양하게 도자기로 만들어서 매년 모으는 재미를 준다. 프랑스 골동품 시장에 가면 항상 어딘가에 박스 가득 들어있는 깜찍이들이 이것이다. 

꼴뚜기 같은 나의 첫 페브

요리학교에서 만들어 봤지만 시기에 맞춘 디저트를 직접 사서 먹으니 기분이 다르다. 비록 칼을 집어넣자마자 칼 끝에 느껴지던 페브, 누구도 왕이 되지 못한 밤이지만 말이다. 

보통은 고급스러운 아몬드 크림이 가득 들어있어 고소하고 달콤하다.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는 왕관 같은 둥그런 모양에 과일 맛이 나는 브리오슈 케이크 버전이 있고(스페인 지역에서 많이 나온다), 또 요새는 파티시에가 솜씨를 부려 전에 없던 걀레뜨 데 후아가 마구 나오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음식은 아니건만 신년 초에만 쫙 깔리는 걀레뜨라서 그런지 조금은 신성한 느낌이 든다. 떡국이 여의치 않으니 걀레뜨라도 한 입하자, 라는 인사도 오간 한국인들끼리의 대화도 심심치 않다.

한 입만 먹어도 '걀레뜨 먹었구나',

알 수 있게 만드는 게 또 이 파이다. 조심히 든다고 들어 올려도 안타깝게 부서지기 일쑤인 파이의 흔적은 입가에 손끝에, 그리고 입고 있던 스웨터를 탁탁 털면 우수수.

올해 남기고 싶은 흔적을 곰곰이 생각해보며 부스러기를 줍는 일월 첫 째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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