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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Jan 02. 2021

2021 나무 톡톡, Touche du Bois

나를 울린 케이크, 뷔쉬 드 노엘 Bûche de Noël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전통을 좋아하는 유럽인들은 나무에 대한 애착도 있다.

프랑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묵은 장작에 불을 붙여 며칠 동안 태우는 풍습이 있었다.

온 가족이 벽난로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 

어느 동화나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데 이들에게는 전통이자 일상이었다.

성탄 이브날부터 성탄 주간 1월 6일, 약 열흘 동안 최대한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커다란 나무를 밝혔다.

새해 소망과 소원을 담아 염원하는 불씨였다.


19세기에 석탄이 주요 에너지 자원이 되면서, 동화 속에서 훌쩍 빠져나온 듯 매우 현실적인 이유로 진짜 통나무가 아닌 통나무 모양 케이크가 벽난로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파티시에 '안토니오 샤라부(Antoine Charabot)'가 통나무 모양 케이크(bûche 가 통나무)를 선보였다고 하는데, 이후 자연스럽게 다양한 맛과 재료의 변형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자신의 심벌인 마카롱을 올린 파티시에 피에르 헤르메 Pierre Hérme 케이크부터, 요새 가장 핫한 젊은 파티시에 세드릭 그로렛 Cédric grolet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케이크는 80유로가 가장 낮은 가격대이다. 그런데도 몇 주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소셜미디어에서나 군침만 흘리며 있어야 할 만큼 인기가 대단하다.

 염원을 담았던 장작을 사르르 녹는 달콤함으로 변신시킨 와중에 스토리가 있고 의미가 있으니, 크리스마스 상차림을 마무리하기에 최적화된 셈이다.



그런 고급 수제 케이크는 아니더라도, 파리에서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인데 나는 꼭 맛보고 싶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부터 집 앞 베이커리에 이 케이크가 놓이는 순간까지 말이다.

산책 겸 동네를 돌면 베이커리를 네 개 지나치는데, 가게마다 다른 색깔과 모양의'뷔쉬 드 노엘'구경이 먹지 않아도 달콤한 구경이었다.


그리고 이브날,

 마치 우리나라 통금이 있었던 80년대처럼 12월 24일만 통금이 해제되었던 날이었다. 유럽 크리스마스의 정점은 복작거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어슬렁대는 것인데 올해는 그것도 물 건너갔고 파티는 말해 무엇하나. 해서 백화점에 걸린 장식이라도 잠깐 보고 올까, 거기에서 뷔쉬 드 노엘 케이크를 사면 되겠다, 조금 비싸도 이런 날 예쁜 케이크를 사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덮어쓰고 모자도 푹 눌러쓴 채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향했다. 입구 문을 열려고 하는데 출구 문쪽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오더라. 문 앞에 공지가 적혀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일찍 폐점합니다.'

 시계는 오후 다섯 시 오십 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다른 가게와 백화점 문 닫는 시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오전 영업만 해서 정 오면 끝이 났고, 백화점은 오후 여섯 시에 스르르, 셔터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나마 백화점에 있는 트리 장식도 못 보네. 삼십 분만 일찍 왔어도 보는 건데.


 매 년 엄청난 인파로 들썩이는 샹젤리제 거리에 당도했다. 차도 양옆으로는 빨갛게 수 놓인 나무 장식이 반짝이고, 건너편 정가운데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개선문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람이 너무도 차가웠다. 나무에 걸린 붉은 장식들도 몸을 떨었다. 

 바람이 이렇게 찬데 뜨거운 눈물이 하나 두울,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버리기 시작했다. 

 마스크 안쪽으로 들어간 눈물은 떨어지지 못하고 답답하고 지저분하게 얼굴을 흩트렸다.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울게 될 줄이야, 스스로가 짠해서 눈물이 더 나더라.  

 잘 참아왔는데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타지 생활이 녹록지는 않았나 보다. 그리고 사실 이브날 전 며칠은 숙면도 못했는데 그 날 오전에는 허리 통증으로 병원을 다녀왔다. 보험이 되는지 안되는지부터 생각해야 할 처지가 서러웠고, 안 되는 불어로 병원을 가니 멍청이가 된 것 같았다. 


친구는 놀란 눈으로 하지만 나를 안아주었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엉엉 울 수 있었지만, 내 심정을 이해할 수는 없으리란 생각에 진한 외로움이 복받친다.


"케이크를... 통나무 케이크를.. 그걸 못 사서 그래... 흐엉... 훌쩍..."


딱 두 개 남은 통나무 케이크가 진열대에 외로이 놓여 있던 동네 제과점에서 25유로나 주고 케이크를 샀다. 여태 구경해온 케이크들에 비해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케이크였지만, 그거라도 사지 않으면 이브를 지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Toche du Bois!' 

나무를 두드려!

영어권에도 있는 이 표현은 프랑스에서도 쓴다. 나무로 된 것에 톡톡, 행운을 비는 것이다.

미신 따위 믿지 않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1월 1일에는 한 번만,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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