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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Jul 28. 2021

그냥 그 한 마디

옛날 전병

-전병 오랜만에 먹고 싶다, 저거 보니까.


무슨 프로그램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한국 예능 꼭지를 같이 보다가 나온 옛날 과자를 보고 그가 한 마디 했다. 주전부리를 잘 찾지 않는 사람인데, 그래도 역시 한국 맛은 그리운 건가? 파리에 온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나와 달리, 공부를 오래 하고 일을 시작해 어언 5년이 다 되어가는 타지 생활이니 그럴 만 하지.


마침 엄마가 건어물과 반찬을 비롯해 몇 가지를 국제우편택배로 내게 보내실 예정이었다. 아빠가 시장에서 멸치를 사다가 넣어주겠다고 하셨던 참,

‘아빠, 시장 가면 종합 전병 이런 거, 조금만 사서 같이 보내주실 수 있나?’

혹여나 아빠가 서운해하실까 애인이 먹고 싶단 얘기는 쏙 뺀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아빠는 오 분도 채 안 되어 답장을 하신다.

‘건어물 시장이라 과자는 안 팔아. 인터넷으로 두 박스 지금 주문했다. 내일 새벽에 배송 온다니까 같이 보내줄게.’

‘(최고)(최고)’

아빠한테 살짝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워낙 강냉이, 떡, 고구마 등 옛날 입맛을 가진 걸 아시니 딸내미가 먹고 싶어서일 거라는 확신으로 주문하셨을 테다. 중간 크기 박스로 포장했다가, 전병 때문에 한 사이즈 큰 박스로 다시 포장해 이튿날 부쳐주셨다.


택배 부쳤다고 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무사히 도착한 소중한 갈색 상자.

전병 과자 작은 박스와 함께 엄마가 꼼꼼히 포장한 찬 거리를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젓갈 한 움큼을 랩으로 한 겹 싸서 뚜껑을 꼭 닫은 플라스틱 용기를 보니, 너무 익숙한 한국 집에서의 반찬통이다. 이게 뭐라고 반갑고 엄마가 직접 한 젓갈도 아닌데 엄마 음식, 집 냄새 같다.


-먹으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왜 안 먹어? 벌써 조금 눅눅해졌잖아.


과자를 모셔만 두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응? 너 먹고 싶어서 보내달라고 한 것 아니야?


-아니 나도 좋아하는데 네가 먹고 싶다고 해서 아빠한테 부탁한 거였는데?


-...? 나 전병 안 좋아해, 여태 살면서 옛날 과자 찾아먹는 적이 없는데. 내가 먹고 싶다고 한 일이 없을걸?


-......


-......? 


 네가 그랬다, 안 그랬다 옥신각신 오 분여 지났을까. 정말로 전병과자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눅눅해진 과자보다 내 마음은 더 눅눅해졌다. 예쁜 접시에 조금 담아서 식탁에 올려놓았다가 이 대화를 끝으로 나는 혼자 한 접시를 다 먹었다.


 한 시간여 말을 안 하다가 나는 참지 못하고,


-진짜 싫어한다고 해도 내가 아빠한테 부탁해서 보내달라고 한 거라고 했잖아. 그러면 성의를 봐서라도 고맙다고 한 마디 하면 안 돼? 하나 먹어보겠다고 하면 안 돼? 내가 이 앞 시장에서 사 온 것이라 해도 그렇게 말하면 기분 상하는데, 한국에서 보내온 걸 보고 꼭 그렇게 말해야 직성이 풀려?


 나는 원체 속에 있는 말을 잘 안 하는 성격이라 이렇게 한 번 쏟아내면 내 감정에 내가 취해서 눈물까지 찔끔 난다.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그런 편이다. 과자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게 자존심 상했지만 내게는 과자 하나가 아니라 그의 무감함 때문에 속이 상한 거다. 


당황한 그는 서둘러 사과를 하고 고맙단 말을 했지만, 상황의 모면이었을 뿐일 테다.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심함에 대해 어떻게 예민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나는 그것에 조금 더 무뎌질 수 있을까.


혼자 먹으려고 하니 과자 한 상자가 이렇게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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