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누나 Dec 01. 2021

음식의 정체성

잠봉 뵈르


정작

일 년간 동안 지낸 프랑스에서 사 먹어 본 일이 거의 없다.

버터와 잠봉만 달랑 들어있는 다소 부실한 샌드위치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겉바속촉 바게트에 짭짤한 잠봉, 고소한 프랑스산 버터인데, 맛이 없을쏘냐! 하지만, 선택권이 있다면(항상 있으니까) 치즈와 허브, 토마토의 조합 혹은 반미 스타일 바게트 샌드위치가 나는 좋다. 


얼마 전 귀국한 후 찾아보니,

이제 한국에서도 샤퀴테리를 만들거나 안주로 내놓는 가게, 온라인 숍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더라.


‘샤퀴테리(Charcuterie)’는 소금에 절이거나 훈연하고 발효시킨 유럽식 육가공품 전체를 통틀어 표현하는 단어로, 프랑스어로 ‘살코기(Cair)’와 ‘가공된(Cuit)’이 합쳐진 말이다.

 여느 음식이 그렇듯, 소금에 절이거나 훈연하는 방식, 익히고 찌는 방식, 바람에 건조하는 방식 등 다양한 조리방식과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온다.

 돼지의 뒷다리를 가공해 만든 얇은 햄을 염지 방식, 습도, 건조 시간 등 만들어지는 조건에 따라 스페인에서는 하몽(Jamon), 이탈리아에서는 프로슈토(Prosciutto), 프랑스에서는 잠봉(Jambon)으로 다르게 부른다. 즉, 세 가지가 기본적으로 콘셉트가 같고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잠봉(Jambon)’은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잘라, 겨울에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묻어둔 뒤 봄에 약간 습기가 있는 곳에서 숙성시킨다. 그리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건조과정을 거치는데, 이탈리아의 프로슈토나 스페인의 하몽과 다른 점은 돼지기름에 밀가루를 섞은 반죽을 살코기 부분에 바른다. 이 반죽을 바른 이후로도 8개월에서 1년을 더 숙성시켜 만들어내는 것이 프랑스식 잠봉. 돼지기름에 밀가루 반죽, 이상하게 들리지만 밀가루 사용이 흔했던 이들에게는 상식적으로 떠올릴만한 방식이었을까?


서울에서 무려 두 시간이 넘는 대기,

일반 프랑스 바게트 삼분의 일 크기를 또 세로로 반 가른 잠봉 뵈르를 먹었다. 

프랑스에서 이것의 두 배 크기가, 이것의 절반의 가격도 안 하면서 물론, 맛도 다르다. 많은 수고를 거쳐 나온 좋은 햄인 것도 알겠고, 프랑스 버터를 듬뿍 넣은 것도 알겠다. 그러나 일단 바게트 풍미부터 실망스럽고 텍스처도 떨어진다. 두 시간 기다리면서 근처 카페에서 마신 커피가 다 아까울 참이다.


진짜 잠봉 뵈르를 맛보지 않은 이가 먹었다면 만족할 만한데, 아쉬운 감은 어쩔 수 없다.


서울식 잠봉 뵈르를 질겅 씹으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희귀성을 바탕으로 '저곳' 현지의 맛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서 내보인다는 것이,

'이곳'에서 더 맛있는 재료와 방식으로 요리한 것을 내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일까.

전에 없던 맛 혹은 반대로, 먹어본 추억을 맛보는 경험을 주고 싶은 것이 타문화 먹거리를 만드는 이들이 원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어느 정도'만 재현 가능하다면, 그 수고로움과 코스트를 감수해도 괜찮을까.

이국 문화를 비교적  많이 접했던 나도, 내가 경험한 색다른 맛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어 무한히 공감한다.

동시에, 내가 맛있다고 감탄했던 음식들은 '그곳'의 정체성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인 듯하다. 고로, 딜레마에 빠진다.


요리를 업으로 살려면 한 입에 생각, 두 입에 고민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냥 그 한 마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