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한국인 승무원 누구 있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 착륙 한 시간 전, 사무장이 우다다 갤리 커튼을 제치더니 물었다.
저렇게 다급하게 물으니 뭔지 모르지만 좋은 일은 아닐 거란 직감, 불안한 마음을 숨기듯 나도 숨고 싶었지만 비행기 안에서 숨어봤자지.
"저뿐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어어, 한국인 승객들에게 문제가 생겼어, 얼른 따라와요."
오늘 비행 드라마는 내게 생기는 걸까?
총총총, 사무장 뒤를 쫓으며 무탈했던 비행에 대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그 짧은 시간 각종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이코노미 좌측 비 상석에 앉은 한국인 세 사람 봤지? 세 분 모두 아디스 아바바 입국이 어려울 것 같아. 그런데 그 사람들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른대, 착륙하면 공항에서 직원이랑 얘기하는 것 좀 도와줘야겠어."
아, 아주 큰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안도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큰 일이다. 한국에서 10시간 비행 후 반나절 있다가 5시간 날아가는 중인데 만약 돌아가야 한다면, 으악. 막상 이 소식을 승객들에게 전하려 하니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자자, 정리 좀 하자.
"제가 통역을 해달라는 거죠? 그런데 왜 입국이 안 되는 건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요, 일말의 여지도 없이 안 되는 게 맞아요? 또 만약 돌아가야 한다면 두바이까지 가나요, 한국까지 가나요? 돌아가는 항 편에 자리는 있는 거예요?"
비행기에서 조종사는 물론, 승무원의 발언은 승객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상공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 자그마한 공간 속 승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제한적인 바탕에 항공사마다의 규정, 나라마다의 규정을 승객이 다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편치 않다. 혹여 본인도 모르게 실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승무원이 하는 말에 쉽게 반박하는 보통의 승객은 많지 않다.
더구나 이 같은 '통보'를 받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들이 알고 싶은 것과 걱정거리들은 모두, 그 전달자에게 돌아오기 마련, 그들이 믿을 거라고는 전달자, 나뿐이다. 이를 대비해 나도 최대한의 정보, 확실한 사항과 아닌 것을 추려 승객이 덜 불안하게끔 해야 한다. 물론 누구도 정확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이 날은, 나도 나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공항에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해봐야 알 수 있겠어, 입국이 되는지 관해서는 말이야. 돌아가는 비행은 만석이긴 한데 노쇼(No show)는 항상 있으니까 탈 수 있을 거야. 한국까지 돌아가야 하는 건지는 아마 한국 측과 이야기를 해봐야 할 듯."
그러니까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다는 말이다. 하하.
승객분들은 당황에 황당을 뒤섞은 표정, 어디서부터 어떤 것을 물어봐야 할지 모르는 듯하셨다. 우리 아빠보다 조금 더 많으시려나 싶은 연배의 아저씨들, 내가 관련한 일이 아니건만 이 순간부터는 나도 관련자가 된 것 같아 진땀이 난다. 그러니까 비자 관련하여 당국에서 입국 거부를 하는 상황, 정확한 이유와 절차를 공항에서 보자고 일단은 진정시킨 다음 착륙 준비를 했다.
“너무 걱정하시지 마세요, 혹여 돌아가야 할 경우라도 저희가 여기에 손님들 두고 무책임하게 가는 건 아니에요. 이야기가 잘 안 돼서 입국 못하시더라도 저를 포함한 승무원들이 최대한 도와드릴 겁니다. ”
가장 연배가 높으신 손님이 거듭 감사하단 인사를 했다.
비행기 문을 열고 입국장까지 걸어가는 길이 왜 이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대기하고 있던 출입국 직원이 셋이나 있어 처음부터 기세에 눌린다. 이들이 당국 비자 승인을 받지 않았는데 입국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불법이라는 것.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대사관과 연락해서 도울 방법은 없는지, 어렵다면 한국에 있는 대사관과 연락이 닿을 동안 공항에 있을 수는 없는지, 기타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지 나는 걸어오면서 생각한 방안들을 물어보았다. 역시나, 너무 단호했다. 출입국 직원들의 말은 어느 공항에서나 그렇지만 엎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나는 당사자 승객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도를 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꽤 오래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론은 입국 거부였다. 한국까지 돌아가야 하느냐 마느냐는 당국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고 에티오피아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두바이로 돌아가는 항편의 일정도 촉박했기 때문에 사무장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재촉했다. 어쩔 수 없이 돌아서는 승객분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느끼며 도움드린 게 없다는 죄송함을 전했다.
“아이고, 아가씨라도 있으니 저희가 뭐라도 얘길 할 수 있었죠, 죄송하다뇨. 저희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복잡한 상황에서도 너무 깍듯한 말투로 나를 존대하는 승객분의 태도가 참 보기 좋았다.
두바이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문의를 하기 위해 적어도 하루를 두바이에서 보내시기로 결정한 승객분들에게 공항 근처 호텔을 비롯해 교통, 환전 등 기본적인 것들을 적어드렸다. 처음 발 디뎌 보는 낯선 나라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을 겪는 하루가 얼마나 심난할까. 비행 중 나의 개인 연락처를 주는 일은 없건만, 만일의 상황에 뭐라도 물어볼 데가 없을 것 같다는 부탁에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시라, 알려드렸다.
기내식을 드시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을 봤기에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 허기가 몰려오지 않을까 싶었다. 컵라면이라도 하시겠냐 했더니 곧바로 네네, 하신다. 컵라면에 이것저것 간식을 챙겨 드리니 내 맘도 조금 편해졌다. 우리 아빠였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실제로 부모님이 두바이에서 처음 비행기 타실 때 조금 헤매셨는데, 눈치로 금방 알고 살갑게 챙겨주셨던 한국 승무원 분이 계셨다. 본인도 한국 돌아가는 휴가 중으로 일하는 게 아니었고, 내 부모님이 도움 요청한 것도 아닌데 나서서 알려주시고 도와주셨다니 너무 감사드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일의 일부인 상황이었으니 실제적인 도움이 돼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연락처를 가져가셨지만 이튿날 따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궁금도 하고 걱정도 된 내가 먼저 문자를 드렸더니, 잘 해결이 되고 있다는 답장이 왔다. 신경 써줘서 많이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하시면서, 한국에 오면 밥 한 번 사주시겠다면서. 하하. 더 큰일이 생기지 않았다니 그것으로 다행이다. 하여간 나로서도 쉽지 않았던 비행 에피소드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