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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01. 2024

구십 오일. 유용과 무용

생크림 머핀


 오사카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전날 마트에서 사 둔 플레인 요거트를 꺼내 마셨다.

앗,

요거트가 아니고 우유인가 봐.

매일 새로운 브랜드나 제품으로 먹어보고 있었는데 팩에 들어있어 색다른데, 생각하고 집어 들었더랬다.

다시 한번 쪽 빨았는데, 왜 이렇게 묵직하지?

일본어 까막눈이라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뒷 면을 보니 휘핑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런, 생크림이구나.

갑자기 속이 느끼한 게, 모르고 다 먹었으면 1,500칼로리쯤 아침으로 먹었을 거다.


에잇, 버릴까 하다가 “한국에서 생크림 비싼데. 이거 맛도 좋고 말이야.”

뚜껑으로 밀봉되는 형태라서 수하물에 부쳐 굳이 가지고 왔다.


위잉 위잉,

저녁까지 먹고 나서 휘핑기를 돌리는 나를 보고 남편이 ‘또’ 뭘 만드냐며 주방으로 다가왔다.

“물 건너온 생크림인데 어떻게든 써야지!”

그런 나를 못 말린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그, 설거지가 자기 몫이라 걱정됐나.

베이킹은 잘 못하지만 오븐 안에서 부풀어 오르며 향긋한 빵 냄새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즐긴다.

설탕, 달걀, 밀가루 그리고 크림의 아주 간단한 레시피를 이용해 생크림 머핀을 굽고,

조금 생크림을 남겨 휘핑해 다 구워진 머핀과 곁들였다.

번쩍번쩍한 요즘의 디저트들에 견주기엔 많이 얌전한 모습의 머핀이 오히려 정감이 간다.


뭐든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때때로 우유부단해지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쓸모를 만들어보려 하기도 한다.

반대로 남편은 원래의 쓰임을 다한 것은 칼같이 버리는 편이라 군더더기 없는 생활을 한다.

우리 아가는 어떤 점을 받아들이려나,

자그마한 것도 아이가 받을 영향을 생각하게 하는 머핀 하나로 오늘의 아침 식사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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