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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Feb 29. 2024

구십 육일. 임당 뛰어넘기

그린 샐러드


임신 중기 또 하나의 단계, 임신성 당뇨 ‘임당’ 수치 검사. 보통 24주에서 26주 사이 진행하는 임당검사는 원래 당뇨가 없던 사람이 임신 후 태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인해 임신부의 인슐린 기능이 떨어지게 되는 경우를 진찰하기 위함이다. 일정 수치 이상이면 재검사, 확진이라면 출산 후에 또 검사 관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임신 초기 두 번의 기형아 검사 고비를 넘고 나서 중기에 맞딱들이는 또 한 번의 긴장되는 순간이다.


시험 앞둔 학생의 벼락치기처럼 전 날 갑자기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본다. 평소에 식단이나 운동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도 검사를 한다니까 불안해졌다. 한 끼를 이렇게 먹으면 저녁에 양껏 먹게 되기도 하고, 또 한 두 끼 관리한다고 결과가 변하랴 싶으나, 한 끼라도 보탬이 되거라.


각종 쌈채소를 한 입 크기로 뜯고 노란 파프리카와 적양배추를 얇게 썰어 색감을 살린다. 베이컨 대신 등심햄 조금과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토핑으로 삼고, 드레싱은 상큼하고 가볍게 올리브 오일에 라임즙, 다진 양파에 소금 후추로 끝냈다. 라임 제스트로 마무리해 싱그러운 맛을 더 살린다. 빵 한쪽 곁들이는 건 샐러드에 대한 예의라며.


호르몬의 영역이라 먹는 것과 관계가 크지 않다는 말도 있다. 아이스크림 한 통 먹고 검사해도 정상이었다는 산모도 있고, 일주일 풀만 먹어도 재검사했다는 산모도 있다. 친구 하나는 잠을 못 자고 갔더니 수치가 높게 나왔고, 다른 하나는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중 검사해서 높게 나온 것 같단다.


담배 평생 펴도 폐암 안 걸리는 사람도 있고 비흡연자가 폐암에 걸리기도 한다. 나라는 한 사람의 세세한 데이터를 알지 못하는 한 내가 임당이 위험 수치일지 아닐지는 누구도 모를 것.


다행히 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다.

오늘은 아이스크림 하나는 먹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조금 우습지만 자연스러운 걸까.

통과의 의미가 이제 맘 놓고 먹어도 된다는 게 아닌 건 알지만, 시험도 마찬가지로 다 잊어버려도 된다는 거 아니듯이

한 번의 쉼표를 가져본다.

건강한 식단의 효용을 믿는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구십 여 일과, 아가의 수많은 날들의 먹을거리를 헤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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