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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Feb 28. 2024

구십 칠일. 아기를 위해서

나폴리탄


‘태교여행’이라는 이름하에 교토와 오사카에 며칠 다녀왔다.

‘태교여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없이도 걷고 걸어 돌아와 보니 살이 조금 빠져 있었다.

(입덧기간만 아니면 임산부는 살이 계속 찌는 것은 아니었던 거다!)


코로나 기간 중 떠올랐던 국내 오마카세 등 고급요리 즐기기가 한 물 가고,

직접 날아가 적당한 가격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게 된 요즈음.

엔저효과까지 더해져 일본은 그야말로 관광객으로 득실득실했다.


마치 오사카에는 여행자밖에 없는 것 같았다.


오사카 사람들이 가는 맛집은 어디일까, 오랜 검색과 발품으로 찾아 들어간 영화 ’ 심야식당‘과 흡사했던 철판구이집.

손님이 더 들어오면 의자를 당겨 당겨서 자리를 만들어, 저녁이 무르익자 다닥다닥 붙어 지글지글 철판요리를 집어먹는다.

디귿자로 형태로 손님들이 모두 요리사를 마주 보고 있어서

옆 자리에서 시킨 건 뭔지 궁금해지고 먹고 싶어 지며 점차 마치 대화는 나누지 않는 일행이 된 듯하다.

우리 옆자리 부부는 십 년 넘는 오리지널 오사카인들로, 어쩌다 우리는 같이 건배를 하고 있었다.

나보고 왜 술을 안 먹냐고 하더니(누가 봐도 그곳에선 맥주를 마셔야 하는 분위기) 내가 배를 가리키자 ‘아~,에~~‘하는 일본인 특유의 리액션이 나왔다.

자기들이 주문한 오꼬노미야끼 절반을 툭, 잘라 우리 철판 앞에 놓아주신다.

아주머니는 내 배를 톡톡, 가볍게 두드리며

“아기를 위해서!”

하시니 거절 못하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뱃속 아가와 함께 한 여행이라 그런지 특별하게 태교를 위한 일정 같은 건 없어도 특별해졌다.

그게 태교여행인가?

집에 돌아온 이튿날, 여행의 여운이 남았기도 하고 킷사텐에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못 먹은 나폴리탄을 만들어봤다.

케첩을 소스로 먹는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 한 번도 안 해 먹어 봤는데,

깊은 맛은 없지만 소스가 입에 착착 감기면서 소시지 향이 소박한 집밥스럽다.

‘심야식당’에 나온 나폴리탄 편에서처럼, 엄청난 요리는 아니지만 종종 생각나는 추억의 맛이라는 한 접시.

우리 아가는 어떤 추억의 맛을 가지고 커갈까.

문득 나의 역할이 중대하게 느껴지는 게,

‘아기를 위해서!’

마치 만사 중요하게 만드는 구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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