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탄
‘태교여행’이라는 이름하에 교토와 오사카에 며칠 다녀왔다.
‘태교여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없이도 걷고 걸어 돌아와 보니 살이 조금 빠져 있었다.
(입덧기간만 아니면 임산부는 살이 계속 찌는 것은 아니었던 거다!)
코로나 기간 중 떠올랐던 국내 오마카세 등 고급요리 즐기기가 한 물 가고,
직접 날아가 적당한 가격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게 된 요즈음.
엔저효과까지 더해져 일본은 그야말로 관광객으로 득실득실했다.
마치 오사카에는 여행자밖에 없는 것 같았다.
오사카 사람들이 가는 맛집은 어디일까, 오랜 검색과 발품으로 찾아 들어간 영화 ’ 심야식당‘과 흡사했던 철판구이집.
손님이 더 들어오면 의자를 당겨 당겨서 자리를 만들어, 저녁이 무르익자 다닥다닥 붙어 지글지글 철판요리를 집어먹는다.
디귿자로 형태로 손님들이 모두 요리사를 마주 보고 있어서
옆 자리에서 시킨 건 뭔지 궁금해지고 먹고 싶어 지며 점차 마치 대화는 나누지 않는 일행이 된 듯하다.
우리 옆자리 부부는 십 년 넘는 오리지널 오사카인들로, 어쩌다 우리는 같이 건배를 하고 있었다.
나보고 왜 술을 안 먹냐고 하더니(누가 봐도 그곳에선 맥주를 마셔야 하는 분위기) 내가 배를 가리키자 ‘아~,에~~‘하는 일본인 특유의 리액션이 나왔다.
자기들이 주문한 오꼬노미야끼 절반을 툭, 잘라 우리 철판 앞에 놓아주신다.
아주머니는 내 배를 톡톡, 가볍게 두드리며
“아기를 위해서!”
하시니 거절 못하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뱃속 아가와 함께 한 여행이라 그런지 특별하게 태교를 위한 일정 같은 건 없어도 특별해졌다.
그게 태교여행인가?
집에 돌아온 이튿날, 여행의 여운이 남았기도 하고 킷사텐에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못 먹은 나폴리탄을 만들어봤다.
케첩을 소스로 먹는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 한 번도 안 해 먹어 봤는데,
깊은 맛은 없지만 소스가 입에 착착 감기면서 소시지 향이 소박한 집밥스럽다.
‘심야식당’에 나온 나폴리탄 편에서처럼, 엄청난 요리는 아니지만 종종 생각나는 추억의 맛이라는 한 접시.
우리 아가는 어떤 추억의 맛을 가지고 커갈까.
문득 나의 역할이 중대하게 느껴지는 게,
‘아기를 위해서!’
마치 만사 중요하게 만드는 구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