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누나 Mar 10. 2024

팔십 육일. 러브 하우스

소고기 미역국


친정에 온 김에 조금 이른 내 생일파티를 가졌다.

우리 식구는 거창하지는 않아도 생일에 항상 소고기 미역국에 케이크 초 불기를 빠뜨리지 않고 해 왔다.

이제 나는 출가외인이지만 날짜가 대충 맞은 김에 올해도 축하를 직접 받을 수 있어 행복한 점심이었다.

내가 아이 낳으면 다 같이 이렇게 생일 파티는 당분간 못하겠다 하면서,

출산하면 마치 아무것도 못 할 것처럼, 하하.


이번 내 생일엔 언니가 끓인 미역국을 난생처음 먹었다.

이사를 막 끝낸 터라 나름대로 집들이 겸 친정 떠나기 전 언니 집에서 밥을 먹자 했는데, 언니는 정리하다 보니 자정이 넘어 새벽 두 시까지 식구 열 명의 미역국을 끓였단다. 좋은 한우 국거리를 잔뜩 넣어 미역보다 고기가 더 많을 것 같다. 언니는 하면 못하는 건 아닌데 요리에 취미가 전혀 없어서 평소에도 엄마가 반찬을 해주시고 밀키트 등을 애용한다. 그럼에도 대용량 미역국에 국수도 삶고(우리 집은 경상도 외할아버지의 영향 아래 생일 미역국엔 항상 소면을 말아먹는다), 애호박 전까지 부친 한 상을 보니 얼마나 정신없었을까 싶다. 기억도 안 날 만큼 언니가 앞치마를 두른 모습도 오랜만이다.

항상 먹던 엄마표 미역국과 또 다른 맛의 애정 어린 미역국 맛.

밥 한 공기 뚝딱하고 케이크에 과일까지 만찬을 즐긴 참에 뱃속 아가 태동도 어찌나 빨랐는지 모른다.


차편 시간에 맞추느라 정리도 많이 못 도와주고 나오는데, 언니는 남편에게 “우리 동생 보필 잘해줘요.” 당부한다. 출산 팔십 여일 남은 시점, 낳기 전까지 아마 얼굴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발걸음이 쉬이 안 떨어졌다.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 나온 엄마와 언니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배웅한다. 막상 출산 때 친정 식구들이 가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조금, 조금보다 조금 더 허전하다.


마음 단단한 엄마가 되어야지 싶다.



작가의 이전글 팔십 칠일. 보통날 보통이 아닌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