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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11. 2024

팔십 오일. 가드 올려

꽃게 찌개


친정의 다복함과 편안함에서 빠져나와 남편과 둘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밀려있는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풀이 죽어 있는 화분에 물을 주고,

하나씩 비닐팩에, 신문지에 싸여있는 엄마의 반찬을 정리해 냉장고에 넣었다.

며칠 사이 상태가 안 좋아진 몇 가지 식재료들도 냉장고에서 비워내 청소를 하고,

여기저기 쌓인 먼지도 털어내면서 우리의 일상을 재개했다.


냉동고에 엄마 잡채를 보관하려고 열어보니 깜빡하고 있던 꽃게 세 마리가 보였다.

공간 차지도 많이 하는 녀석들을 오늘은 먹어야겠다 싶어 부족한 재료들을 사러 나섰다.

애호박은 너무 비싸니까 빼고(애호박 하나 3천 원이 넘는 시대가 오다니),

두부와 느타리버섯을 집어 들었다.

버섯을 장바구니에 넣는데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거셨다. 나는 끼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급히 뺐다.

“버섯이 아주 싱싱하네요, 이걸로 뭐 해 먹어요?”


조금 당황했지만 찌개 먹을 거라고 대답을 한 뒤 자리를 뜨려는데,

‘새댁이냐며, 어머, 임신했나 보다 몇 개월이에요?‘를 시작으로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이윽고 조금 더 젊은 아주머니가 다가왔더니 원래 아주머니는 자기가 받은 대답을 되풀이하며 즐거워했다.

둘은 근처 사는 모녀 사이라고 했다.

저출산 시대에 애국을 한다, 딸이냐 아들이냐, 어려 보이는데 첫 아이냐, 근처 사는 거냐 등등 양쪽에서 물어보니 질문이 두 배가 되었다.

대화의 마지막은 혼자 심심하면 전화하라, 차라도 마시자, 내가 오늘 파김치를 담갔는데 좀 주겠다, 뭐 이런 거였다.


아무리 서울이 아니어도 백화점 마트에서 이렇게 오지랖 넓은 분들이라니.

가만히 있다가는 우리 집 앞까지 오겠다 싶을 만큼의 과한 접근에 가드를 올렸다.

아기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물으니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풀어졌던 것 같다.

괜히 이런저런 대답을 많이 해서 마음이 찜찜해졌다.

정말 친화력 만렙인 엄마와 딸일 수도 있지,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기려다가도

나를 타깃 삼아 어떤 꼬임에 넘어가게 하려는 건 아니었을까? 혼자 있는 임산부가 쉬워 보였나?  도를 믿으세요 이런 건가.

안 그래도 남편이 출근하면 줄곧 혼자 있느라 정 붙이기 어려운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 괜한 경계심이 한 층 더 쌓인 것 같은 게

아이 낳고 즐겁게 키울 수 있을까, 에 이른다.


꽃게 찌개는 맛이 괜찮았고, 남편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며 잠시 들었던 얕은 불안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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