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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09. 2024

팔십 칠일. 보통날 보통이 아닌 말

백아차


광화문이 지척에 보이는 찻집에 들어서니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빗줄기가 굵어졌다.

우산도 없었던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따뜻한 물을 찻잎에 떨어뜨렸다.

잎이 피어나며 은은하게 뿜는 차향만으로 조금 얼었던 피부가 휴식을 맞이했다.


찻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는 많지 않다.

인사동에 갔기 때문에 찻집에 간 것이 아니라 찻집에 가기 위해 안국역까지 방향을 틀었다.

어차피 멋진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카페에 가도 커피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임산부라 찻집은 반가웠다.

프랑스에서 처음 만난 다섯 살 어린 동생 H, 차를 소중히 여기고 음미할 줄 아는 ㄱ녀.

처음 요리학교에서 마주쳤던 순간 나를 경계하던 눈빛이 아직 떠오른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반 유일한 한국인 동기라는 반가움에 말을 걸었다.

코로나를 관통한 파리에서 우리는 지척에 두고 못 만나는 연인처럼 끈끈해졌고,

 오늘은 언니동생이 아닌 인생 여정의 친구가 되었다.


대학이 전부가 아니지만 내 주변 거의 모든 이가 대학을 나온 탓에, H가 편견이 없고 순수한 이유 중 하나는 대학을 안 다녀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일찍이 대학이 아니어도 인생의 길은 있다고 여겨 이런저런 일을 하며 성장한 그녀는 일머리가 좋다.

일하면서 할 말을 분명하게 할 줄 알고 빠릿빠릿하며 힘도 세다.

그 이면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고 상처도 많이 받는데,

그만큼 타인을 잘 관찰하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장점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특기가 있는 친구.

‘보통 그렇잖아 ‘라는 말을 불편해하며 한 가지에 갇혀 생각하고 강요받음을 거부한다.


“언니 요리에는 복합미가 있어. 언니가 살아온 다양한 문화가 조금씩 녹아있는 것 같아서 개성이 있다니까. 어떻게든 언니는 요리를 계속했으면 좋겠어! “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큰 요리에 조금 회의적이 되었을 때 H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내가 해 준 요리를 먹고 한 말이다.

두고두고 생각이 나고 고마웠다.


맑고 순하게 빛나는 백아차, 딱 H를 닮았다.

보통의 어떤 것보다 예쁘다.


“언니는 자신 없다고 해도 분명히 언니 식대로 아기를 잘 키울 거야.”


오늘도 위안은 다 내가 받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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