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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08. 2024

팔십팔일. 모성애

오이소박이

엄마는 내가 집에 온 날부터 사흘 내내 오이 찾아 삼만리다.

아빠한테 어느 마트에 가보라고 하셨다가 가격을 듣고 아니다 엄마가 다른 데 가보겠다,

시장에 갔더니 또 마음에 드는 오이가 아니라고 못 사 오셨다.

어제는 일주일에 한 번 서는 아파트 장에 나가보셨는데 2개에 3,500원이나 한다고 깜짝 놀라셔서 또 그만 빈 손으로 오셨다.


"요새 오이 비싸잖아, 뭐 하려고 그렇게 오이를 찾아? 집에 반찬 많은데?"

"아니, 너 오이소박이 좋아하니까 해주려고 그러지!"


아휴, 그것 때문이었어?

나는 배추김치보다 총각무김치나 오이소박이를 더 잘 먹었다. 사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특별하게 오이소박이만 좋아한 건 아닌데, 어릴 때의 기억이 엄마에게는 더 강하게 남으신 듯하다. 내가 해외살이 하면서 엄마가 자주 챙겨주시곤 했다. 그때는 내가 집에 잠깐 들러 이미 해 놓은 반찬을 가지고만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어떻게 오이를 구해서 절여서 소를 넣었는지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엄마는 당분간 못 볼 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이번에 꼭 오이소박이를 하려고 하셨나 보다. 정작 내가 먹고 싶다고, 가져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데 굳이 요즘의 금값 채소를 찾아다니시니 죄송스럽고 아득한 마음이다.

"엄마, 오이소박이 하지 마. 이번엔 기차 타고 내려갈 거라 짐 많이 안 가져갈 거야."


오늘 아침에 씻고 나와보니 오이 열 개쯤 포장된 비닐이 식탁 위에 있다.

결국 새벽배송으로 주문했다는 엄마.

오늘 저녁 상에는 어련히 오이소박이가 올라왔다. 

아삭한 한 입을 베어 먹는데 뭉클한 맛이 난다.


사흘 내내 서울 여기저기 맛집이랍시고 돌아다니며 먹고 있지만,

요즘의 나는 단순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맛이 좋다.

이십 대 넘치는 호기심과 에너지가 그대로 미식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면

아이를 밴 삼십 대의 오늘은 순수하고 순한 맛에 끌리니

이 또한 모성애의 일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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