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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18. 2024

칠십 구일. 베이비 페어 언페어

냉이밥과 두부달걀국


지난 1월 아기용품에 관해 무지한 채 둘러보기만 했던 베이비페어, 3월에 또 한다고 하길래 그때 사야 할 것들을 사자고 했었다.

어느새 두 달이 훌쩍 지나 사야 할 것들은 대강 알겠으나 사야 하나 싶은 것들이 더 많은 상태로 전시장에 도착했다.

저출산의 위기가 맞나 싶게 입장 시간 전부터 길게 늘어선 줄에 일종의 전투 모드가 발현되었다.

부스 하나하나 보다 보면 끝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 사려고 했던 목록 중 몇 가지 브랜드를 비교해 구입하기로 한다.


갓 태어났을 때 곧장 필요할 물품들 공략이다.

많을수록 좋다는 순면 손수건과 가젯 손수건, 속싸개부터 시작해 피부에 직접 닿으면서 매일 사용할 이불세트, 아기띠도 시착해보길 서너 번.

끝없는 상품 정보와 타사와의 비교 설명을 서서 듣는 것도 힘들지만, 여러 개 보다 보면 뭐가 뭔지 헷갈리기 시작해 머리도 아프다.

생각 못했던 제품들이 세트에 껴 있기도 해서 필요한 건가 고민도 해야 하고, 인터넷이 혹시 더 저렴한가 검색도 다시금 해 보게 된다.

옷가지나 인형, 장난감 심지어 감사하게도 유모차까지 선물 받은 것도 꽤 되는데도 준비할 것이 넘쳐난다.

곧 매트도 깔아야 하고, 아기 침대와 바운서도 장만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분유 제조기, 젖병 소독기, 씻기기 쉽게 설치하는 수전, 아기용 세제, 아이 성장에 따라 달라지는 목욕 도구들 등

대체 예전에는 아이를 어떻게 키웠나 싶다.


십 년 전 첫 아이를 낳은 언니한테 몇 가지 물어봤더니 언니 때는 그런 거 없었다, 그렇게 비싼 거 안 해도 된다라고 하면서도

“어머, 내가 나이 들긴 들었나 보다. 꼰대같이 말하고 있는 거 같네.”

라며 웃었다.

십 년이 결코 짧지 않으니 그 사이 나온 신제품이 얼마나 많겠냐마는, 그만큼 준비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도 비례하여 상승한다.

다행스럽게도 중고거래가 활성화되어 짧게 쓰는 물품들을 조달할 수 있는 구멍이 생기긴 했으나 부부 둘이 지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내가 임신 후 복용 중인 영양제들만 해도 평소 먹던 것의 세 배쯤 값이 나가고 있으니.


우리 부부는 뭐든 유명 브랜드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실효성과 이에 대한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설득이 되면 된다.

그런데 ‘웨딩’, ’ 출산‘, ’ 임신‘, ’ 결혼‘ 등 앞에 수식어가 붙으면 프리미엄이 붙으니 비교 분석에 두 배 에너지가 드는 기분이다. 저출산 대책, 정부와 지역 지원금 등과 반대로 아이용품과 서비스는 더 세분화되고 가격은 올라간다. 출산 지원금인 부모 수당 확대는 환영할만하지만 확대와 동시에 모든 조리원 비용도 함께 쑥, 올라버렸다. (산전, 산후조리 마사지는 일반 마사지의 두 배이기도)


최근 저출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터뷰한 사람 중 한 20대 여자가 ‘나의 아기지만 남이다, 남에게 그 정도 돈과 시간을 쓰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뉴스가 있었다. 그녀가 실제로 어떤 식으로 답을 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이는 출산을 꺼리는 이들 중 극단에 속하겠지만 다소 충격적이기는 했다. 아마 많은 젊은이들은 결혼, 출산을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을 많이도 봤고 미래라고 더 나아질 것이 없어 보여 고민할 테다. 현실을 마주하니 그 고민들이 그저 두려움에 그칠 수 없음을 느낀다.


나름대로 열심히 따져서 사려던 것들을 이고 지고 들어와 마음이 한결 편해졌지만 또 사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다시 무거워진다.

마음 달래줄 봄의 냉이를 손질해 간장, 들기름, 볶은 깨와 비벼 심심한 두부 달걀국에 저녁을 지어먹었다.

내 무거운 마음이 아이를 누르지 않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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