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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19. 2024

칠십팔일. 무행동의 의미

유부초밥


오늘은 뭣 때문인지 하루종일 의욕이 떨어지고 기운이 좀 달린 날이었다.


남편이 일찍 출근하고 나서 아침 9시쯤에야 나는 아침을 대강 챙겨 먹었는데 허전함에 과자에 떡에 군것질이 이어졌다.

보통은 아침 식사 후 창문 활짝 열어 화분에 물 주고, 세탁기를 돌릴 동안 설거지와 청소기, 이삼일에 한 번은 곳곳 먼지 닦기 등 한 시간쯤은 돌아다니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드라마를 보다가 족욕기에 발을 담갔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깨고 나니 또 배가 고프다.

유부초밥 몇 개를 먹고 나서 밀려오는 헛헛함, 약간의 죄책감으로 일단 운동화를 신었다.


어제보다는 쌀쌀했지만 햇볕 아래서는 충분히 따뜻해서 공원으로 향해 빠른 걷기를 하며 ‘운동’하고 있다는 생산성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이십 분쯤 걸었을까, 오른편 배가 아프더니 배뭉침도 살살 오네. 잠시 걸음을 늦춰 천천히 걷는데 나아지지 않아 벤치에 앉았다.

몸이(혹은 마음이)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했는데 굳이 나가서 뭐라도 하겠다고 하니 아가가 말리는 건가.

좀 쉬었더니 아픈 건 가셨으나, 배뭉침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왔다 갔다 하여 걸었다가 멈췄다가 한참도 걸렸다.


집에 하루종일 몇 달을 있다 보면 생산성의 압박감이 매일 있다.

막달까지 직장에 나가는 산모들도 수두룩한데 나는 집에 있으니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없고, 또 실제로 안 하면 무료함이 곧 우울함으로의 악순환이니까.

친구들이 왜 그렇게 바쁘냐고 묻는데, 안 바쁘니까 뭐라도 하는 거다. 글쓰기든 요리든 독서든 운동이든.

오늘은 그 압박감인지 아니면 그저 호르몬인지, 또 아니면 아가가 머리를 아래로 돌려보려 애쓰는 중이라 피곤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 행동도 안 한다고 해서 아무 생각도 안 한다는 건 아니다.

의미 있는 생각 안 하는 하루라고 해도, 뭐.


쿤데라의 책 ’ 무의미의 축제‘ 중 대사가 지나간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사랑해야 해요.”


그런 용기가 좀 필요하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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