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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30. 2024

육십 구일. 태아도 병원은 싫어요

사라다 모닝빵


거의 5주 만에 만나보는 아가라서 어젯밤에는 꽤 설렌 마음으로 잠들었다.

얼마나 컸을지, 다른 이상은 없는지 또 출산 전 마지막 입체 정밀 초음파 촬영도 있어 얼굴도 궁금하고.

아침 든든히 챙겨 먹고 가려고 어제 미리 준비해 둔 일명 ‘사라다’, 감자 샐러드.

신랑에게 퇴근길에 부탁한 모닝빵 배를 갈라 삶은 달걀에 오이도 넣어 두툼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단호박 수프를 곁들여 먹으며,

“얼굴을 잘 보여줘야 할 텐데!”

늦지 않게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고, 애기가 완전히 엎드려있네요. 심장도 제대로 안 잡혀요.”

청개구리 기질이 있나,

요 며칠 그렇게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두드리면서 한 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것 같더니

검사한다니까 가만히 엎드려 있는 녀석.

15분 뒤 다시 초음파를 해보기로 하고 병원 구석구석을 걸으며 선생님이 주신 사탕 하나를 까먹고서는 배를 두드렸다.


‘아가, 일어나, 얼굴 좀 내밀어 봐.’


그래도 묵묵부답이다. 여전히 같은 자세로 엎어져 있는 비협조적인 오늘.

정기 검진의 절반 이상이 이 자세였어서 괜히 걱정도 됐다.

십 분의 시간을 더 주셨고,

우리 부부는 다른 부부가 보면 ‘왜 저럴까’싶게 배를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빠르게 걷다가 콩콩 뛰어도 봤다.

가방에 있던 초콜릿 한 조각도 더 먹어보고, 남편에게 배에 대고 말도 해보라고 한다.

이것저것 하다가 이 모습이 조금 방정맞아 웃음이 터지니 다들 쳐다본다.

생각보다 길어진 오늘 검진에 평소 때와 달리 대기실 사람들을 오래 보게 되었다.

오늘따라 남편과 함께 온 산모가 많아 병원 대기실이 복작복작, 외국인 산모도 있다.

그중 누구도 아는 이는 없지만 알 것 같고 또 모종의 애틋함이 솟아나는 기분이 드는 게, 이것도 호르몬인가.


아직도 엎드려 있었지만 다행히,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반 쪽 얼굴이 드디어 보였다.

고개와 함께 몸통도 조금 돌아가 심장이 파닥파닥 잘 뛰고 있는 것도 확인,

선생님이 배를 살짝 흔들었더니 나도 태동이 느껴질 만큼 잠에서 깬 듯 움직였다.

이내 하품도 하더니만 눈을 번쩍 뜨기도 해서, 뱃속이 아니라 옆에 있는 아이 같다.

입을 벌렸다 꾹 닫으니 하관이 남편이랑 똑 닮아서 하하, 웃음이 터졌다.


‘네 아빠가 빵보다 밥을 좋아하는데, 아침에 빵 먹어서 그렇게 고개 돌리고 있었어?’


아가가 잘 있는 모습을 제대로 본 후에야 안심하며 배를 톡톡, 가볍게 나무라본다.

병원에서 나오고 나니 왜 이렇게 잘 움직이는 건데!

다 괜찮으니까 출산 때만 협조 부탁한다,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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