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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30. 2024

육십 팔일. 함께 해야 하는 아주 작은 이유

강냉이


새벽에 동호회 수영을 나간 신랑은 다 같이 아침식사 후 커피 한 잔, 보통 오전 열 시쯤 들어오는데,

오늘은 열 시 반이 넘어가도록 소식이 없다.

두 시간 수영을 새벽부터 하니 다들 아침식사를 거하게 하는 편, 때때로 낮술 아니 아침술도 한두 잔 으레 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한 번은 낮에 약속이 있었음에도 거나하게 취해 들어온 전적이 있어서,

안 들어오니 약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 때문에 동호회를 부부가 같이 해야 한다는 분들이 계셨지만)

오늘은 저녁 외식 나가기로 한 것 말고는 일정이 없어서 바로 전화해 닦달하지 않고, 당장 먹지 않을 것이지만 반찬을 몇 가지 만들고 있었다.


이럴 때면 종종 결혼에 대해 생각한다.

결혼 안 하면 상대방이 좀 늦게 오든, 술을 마시든 또는 누구를 만나 어디를 가든지 내 일상에 내 순간의 기분에 영향을 줄 일이 없는데

왜 굳이 결혼이라는 규제 안에 들어가 스트레스를 받는가.

왜 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그를 닦달을 하고 싶어지는 상황을 만들게 되는가.

그 또한 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잔소리를 듣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가.


열한 시가 조금 넘어서 들어오길래 기다리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좀 늦었네?”

쿨하게 한 마디 했는데, 남편 손에 커다란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매주 안 보이던 강냉이 트럭, 오늘 왔더라.”


이 강냉이는 강원도 옥수수를 사카린 넣지 않고 뻥, 구수하게 튀긴 강냉이로 이 근방 제일 맛있는 트럭에서 파는 거다.

주전부리 중 내가 가장 애정하는 강냉이는 우리 집에 떨어질 날이 없는데,

부피를 줄일 수도 없는 이 강냉이를 나는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도 매 번 꼭 챙기곤 했다.

이사 온 이 지방 이 동네에서 강냉이를 파는 곳이 어디 있는지 이미 파악 완료한 상태,

신랑이 다니는 수영장 앞에 비정기적으로 오는 트럭 강원도 옥수수 강냉이가 내 원픽이었다.


무슨 요일에 오시냐고 물어봐두었는데, 그것마저 지키지 않고 정말 자기 마음대로 왔다 사라지는 야속한 강냉이 트럭.

그래서 신랑은 트럭을 발견한 오늘 커다란 두 봉지나 사 왔다는 거다.


“그렇다고 두 봉지나 샀어, 어차피 나 밖에 안 먹는데.”


라고 말은 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져 버렸다.

내가 그만큼 강냉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우리 식구들도 잘 알지만, 매주 서는 장에 강냉이 가게가 있어도 한 봉지 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뭐, 내가 나가서 사면 그만이었지만 장터 나갈 일이 있다고 나선다면 사 올 만도 한데.

그렇다고 식구들한테 ‘왜 내가 좋아하는 강냉이는 안 사 왔냐’며 사다 달라고 하지도 않고 서운해하는 것도 우습지 않나.

너무 사소한 ’겨우‘ 강냉이라서.

그런데 그 사소한 것 챙겨 사 오는 남편이라 내 오전이 즐거워졌다.


내 일상과 내 순간 기분에 영향이 좋은 방향으로의 것이 더 많아 함께함을 잠시 잊었나 보다.

겨우, 강냉이 하나로 결혼의 이유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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