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누나 Apr 03. 2024

육십 오일. 인생 선배

오픈 토르티야


 응당 자기가 가장 관심 있는 분야에서 앞서간 사람이 대단해 보이고 그 길은 멀고 험할 것만 같은 법이다.


현재의 나로서는 출산을 한 모든 엄마들이 위대하고,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해내는 부부들이 대단하며 한 아이가 아니라 다수면 존경심이 인다.

신생아 시기를 거쳐 걸음마를 하고,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새삼 인생 선배가 따로 없단 생각도 든다.

영상 추천으로는 워킹맘들의 성공사례들이 알고리즘을 타고 계속해서 올라온다.


가장 친한 대학 동기가 외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길이라며 전화를 걸어와 한 시간 넘게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아가는 잘 크고 있냐며 운을 뗐지만 걱정근심이 가득한 목소리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1년 넘게 만나온 남자와 결혼 얘기를 주고받은 지 몇 개월인데, 남자 집안 쪽에서 부동산 문제가 얽힌 것이 있어 결혼에 있어 지지부진하다고.

며칠 몇 달이 걸리는 문제가 아니면서 큰돈이 걸리기도 했으니 섣불리 친구도 결혼을 압박하기도 어렵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 자르듯 관계를 정리하자니 둘 사이 감정은 나쁠 것이 없다.


“결혼 결심한 것부터, 무탈하게 진행하고 잘 살고 있는 네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라고. 남자친구랑 자녀 계획도 얘기하다 보니 너무 막막하던데, 너는 곧 출산이라니. “


‘결혼’이라는 단어를 통해 애인과 논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들먹일수록 겁난다고 했다.

감정적 문제부터 금전적 방면까지 어느 하나 확신도 여유도 없어지는 기분, 그래 잘 알지.


“무탈한 적이 없어. 결혼을 결정하고 한국 들어와서도 이게 맞나 싶은 때가 한두 번도 아니었지, 네가 말하는 것처럼 여러모로. “


임신출산에 집중하고 있는 나는 결혼 전 막연한 두려움과 흔들림을 잠시 잊었을 뿐이다.

조금 더 준비하고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 이 사람과 지금이 가장 잘하는 선택일까 의구심 등 일생일대 결정이라는 생각에 설렘보다 불안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녀로서는 내가 조금 더 앞서간, 아니 사실은 친구가 하려는 것을 그저 먼저 한 사람일 뿐이건만 그게 너무나 큰 한 걸음으로 보일 시점이다.

결국 앞서간 사람으로부터 조언과 위로만을 약간 구할 수 있을 뿐, 스스로의 방식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

나도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은 했으나 다른 상황과 다른 관계에 놓인 타인에게 뾰족한 방안을 내줄 수도, 대신해줄 수도 없었다.


통화를 끝내니 오후 세 시도 넘은 시각이다.

남편과 저녁에 외식하기로 해서, 과하지 않게 먹으려고 통밀 토르티야 한 장에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 치즈, 삶은 달걀을 잘라 올렸다.

돌돌 말아 야무지게 먹으려고 했는데 더 야무지게 소스를 많이 얹어버려서 안 접히니 오픈 토르티야로 변신하자.

한 끼는 누군가 대신 만들어줄 수도, 조리법을 알려줄 수도 있으니 마음이 좀 편한데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육십 육일. 엄마 마음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